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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l 15. 2018

지금 이대로의 믿음으로

지금 이대로의 믿음으로

순수했던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 변함없는 마음으로 교류하는 친구들이 있다. 살다보면 가끔 사막처럼 메마르고 황폐해진 마음에 오아시스 같은 정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아픔으로 고통 받을  위로의 말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가족에게도 털어놓을  없는 고민을 툭 터놓고 얘기할 상대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떠올릴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다. 친구들을 만나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오래 묵은 장처럼 오랜 시간 다져온 깊고 묵직한 우정이 믿음으로 발효되어 내면에 뭉쳤던 부정의 감정들을 부드럽게 순화시켜준다.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인정 받고, 혼자가 아니란 사실에 존재감을 재확인하고, 앞으로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게 된다.

     

친구들과는 대학에서 만났다. 지적 호기심이 유난히 강했던 우리는 학문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동질감을 느꼈다. 스터디를 만들어 열띤 토론을 했으며, 어려운 공부도 힘을 합해 풀어갔다. 도시락을 싸 와 서로 나눠 먹기도 하고, 소풍도 가고, 도서관도 함께 가는 등 그 시절의 소소한 추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든든하고 가치 있는 공동의 자산이 되었으며, 그것이 현재의 우리를 단단히 묶어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시간의 풍파를 빗겨갈 수는 없었다. 그동안 각자의 삶에 직면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서로에게 소원한 시간을 보냈다. 삶이 다 그렇듯 힘겨운 세상살이에 마음은 있어도 자주 만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바쁘게 사느라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만날 뿐이었다.

그러다 치열한 삶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시기에 접어들자 옛것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느끼게 됐고 이제 실천하는 삶의 중요성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 공동의 목표를 정하면서 예전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여행을 같이 가기로 계획을 세우고 그 나라에 대한 공부를 하자고 뜻을 모았다.

     

토요일 친구들과 오후에 만나 늦은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뜻 깊은 여행을 위해 제대로 준비해보자는 취지였다. 여행할 나라의 꼭 가보고 싶은 도시를 정하고, 그곳의 지리적 특성과 역사적 배경, 민족의식, 고유의 문화 등을 미리 공부하고 가면 여행지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고,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저녁 무렵 카페를 나와 한강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간단한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사서 지척에서 강물을 볼 수 있게 적당한 장소를 골라 자리를 잡았다. 강의 비릿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며 아스라한 기억을 불러왔다. 짜고 찝찔한 냄새가 빠진 바다,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그리운 바다를 도심 한 가운데서 느끼며, 내 것이었던 시간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음이 너무 근사했고 또 그렇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했다.  

     

은 저 멀리 혼자 기울고, 대교의 찬란한 불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물결은 바람의 잔기침에 거품을 물고 이리저리 뒤척였다. 어둠이 밀려오자 가족과 혹은 연인, 친구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더위를 피해 강바람을 맞으러, 밤풍경을 감상하러 온 많은 사람들이 강 둔치에 걸터앉아 저마다의 생각과 감성에 젖어 있었다. 불빛을 머금은 강물에 물든 사람들의 눈과 입은 촉촉한 미소로 젖어 있었다. 지금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강물에 젖어있었다. 그들 속에 우리도 있었다. 한없이 밝고 즐거운 어린 아이들처럼 서로를 보고 웃고 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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