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글을 쓰는 일처럼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럴싸한 표현으로 자신을 포장하려 해도 글을 쓰다보면 글쓴이의 모든 것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글 한 편으로 글쓴이의 사고 성향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그가 쓴 몇 편의 글을 읽어보면 그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은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감지할 수 있다. 그래서 내 글이 공개될 때마다 사람들 앞에 나의 내밀한 부분이 드러나는 것 같아 민망하고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것은 창피함보다 강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구치는 삶의 대한 열정, 꿈에 대한 갈망이 글을 쓰게 만든다.

매 순간 저마다의 의미로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것들, 특히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 주는 묵직한 감동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동안 지나쳤던 소중한 것들을 글의 창고에 보관해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도록, 그리고 비록  풍부하고 대단한 경험은 아닐지라도 소소하고 평범한 내 삶의 경험들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쓴다.

     

현실과 동떨어진 글은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간혹 감동적인 글과 작가의 삶이 괴리된 경우를 발견하면 왠지 글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곤 했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글과 삶이 완전히 일치하긴 어렵다 해도, 글이 자신의 얼굴이고 마음이고 생각이라면 삶 또한 글과 다를 수 없다. 글과 삶이 다르다면 그것은 표리부동한 껍데기와 알맹이처럼 부자연스럽고 모순된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글은 나의 거울이 되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지금껏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기엔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자신과 가족에게만 충실했던 이기적이고 편협한 삶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타적 사랑을 실천하려는 노력도,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노력도, 사회에 대한 관심도 부족했다.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 노력 자체가 무모하게 느껴져 아예 외면해 버리기도 했었다.

지금 글은 나에게 지나온 삶을  옷장 정리하듯 하나씩 꺼내보고, 버릴 것, 수선할 것, 간직할 것을 분리하도록 요구한다. 잘못된 점은 깊이 반성해, 버리거나 고치라  질책하고, 좋은 점은 지속하라 격려한다. 막상 써 놓고 보니  반성문처럼 돼버린 글이 유치하고 부끄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솔한 글이라 생각하기에  용기를 내어 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