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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Aug 25. 2018

망중한

태풍이란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심란했던 며칠이었다. 휴교령이 내려지고 가게는 문을 닫고, 재난문자를 발송하는 등 만반의 대비를 하였지만, 태풍은 마치 성급한 예측으로 자연을 재단하는 사람들을 비웃기나 하듯 일부지역을 본보기로 한바탕 위협을 가하고 한껏 부풀렸던 몸을 빼고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자연의 강력한 힘 앞에 언제나 무력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으로서 그나마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사라져준 태풍이 고마울 따름이다.

잠시 차에서 망중한을 즐긴다. 온통 잿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풍경들은 나지막이 웅크리고, 사방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이미 여름의 것이 아니다. 가을을 열망하는 것들은 서늘한 바람에 힘입어 여름의 끝을 밀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여름의 잔재들은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떠나지 않으려 안간힘 쓰고 있다. 뜨겁고 서늘한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처럼 여름과 가을의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는 당분간 지속되겠지.


바쁜 시간 중에 는 잠깐의 여유는 어떤 시간보다 가치 있다. 일에서 놓여나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소유할 수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지지만 그것을 쓰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체감된다. 같은 시공간에 있더라도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혹은 느리게 생각되는 시간의 상대성은 내가 무엇을 바라고 좋아하는지를 게 해준다. 망중한을 누리며, 나는 잠시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삶마저 멈춘 것 같은 영원의 시간 속에 나와 풍경만이 고즈넉이 용해돼 있음을 느낀다. 생각과 마음에 따라  정해진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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