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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Dec 31. 2018

어쩔 수 없는 습관


어디 잘 보관한다고 신경 써서 놔둔 것이 실수였다. 중요한 것이지만 당장은 쓰지 않을 것이기에 나름 머리를 쓴다고 어디 깊숙이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었을 만한 곳은 다 뒤져봐도 찾을 수 없었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상자 속에 물건을 넣어서 또 포장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높은 곳에 올려놓았으니, 집안에서 무슨 007 작전도 아니고, 호들갑을 떨었던 만큼 특별한 보관의 성과도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찾느라 반나절을 허비했으니, 생각할수록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 게 이상하다.

     

나는 어린 시절 단독 주택에 살았다. 모양과 구조가 비슷한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었다. 집들 사이는 담은 거의 붙을 정도로 가까웠다. 철대문의 잠금 장치는 가로 쇠 빗장이 고작이었다. 안방과 작은 방 사이엔 나무 마루가 있었는데, 마루가 높아 그 밑은 꽤 넓고 깊었다. 물론 광이 있었지만 그래도 마루 밑에 안 쓰는 물건들을 넣어 두곤 했다. 

문득 마루 밑과 관련된 슬프고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당시 집에서 키우던 큰 개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하얀 거품을 물고 눈이 빨개져서 돌아왔다. 그리고 마루 밑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개가 걱정돼 평소 좋아하던 고기 뼈다귀를 얻어서 어떻게든 개를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개는 어린 아이가 듣기에도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며 죽고 말았다. 알고 보니 쥐약을 먹은 쥐를 우리 개가 건드렸던 모양이다. 그 후 마루 밑은 나에게 공포와 불안의 대상이 됐다. 간혹 어른들이 마루 밑에 놓아둔 물건을 가져 오라 시키면 울면서 싫다고 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한참을 어둡고 깊은 곳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엇을 들여다보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어릴 적 경험은 습관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좋거나 싫어서 그것을 계속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데, 런 행동들이  내면화되면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다. 내면의 습관이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의식이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잠재된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주택에 살았을 때 도둑을 맞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개방적인 구조이다 보니 대문뿐만 아니라 뒷문, 쪽문, 심지어 담벼락을 넘어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집 저집 심심찮게 도둑을 맞았다. 모두가 어렵게 살던 때라 대부분 좀도둑이었지만, 자주 그런 일을 보면 알게 모르게 피해의식이 쌓인다.


렸을 때 아끼던 종이 인형이 있었다. 지금은 장난감도 다양하고 풍족하지만, 그때는 아이들 놀잇감을 주로 집에서 만들었다. 헝겊이나 실, 종이가 가장 흔한 장난감 재료가 됐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종이 인형 놀이를 많이 했는데, 두꺼운 종이에 인형을 예쁘게 그리고 색칠해서 오렸다. 그리고 종이 인형에 이름도 붙이고, 옷도 만들어 입혔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정성들여 만들거나, 어렵게 얻은 인형과 옷이 담긴 종이봉투가 사라졌다.


그때는 그랬다. 어린 나에겐 너무 큰 충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집 옷장 서랍에 넣어둔 돈까지 없어졌다. 당시 어머니가 공무원이었고, 월급을 돈으로 받던 시대에 돈 일부를 옷장 서랍에 넣어둔다는 사실을 안 누군가의 소행이라고 추측된다. 집에 자주 드나들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뚜렷한 증거 없이 누구를 의심할 수 없었다. 괜히 문제를 만들어 숨소리도 들릴 만큼 가깝게 붙어 사는 처지에 원수가 되는 불편을 감수할 수 없었다.

때론 의심이 가면서도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강할 때가 있다. 진실을 알기가 두렵고, 진실과 대면할 용기가 없을 때, 진실이 밝혀진 후 겪어야 하는 괴로움과 고통을 생각하면서 차라리 덮어두자고, 모르는 게 약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할 때가 있다. 이성은 그것이 부당하다고 외치지만, 고통을 멀리하려는 본능을 이길 수 없다. 본능은 무의식이란 도구를 이용해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끊임없이 경고한. 그때부터 중요한 것을 어딘가 깊숙이 숨기는 습관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일기나 아끼는 학용품들을 깊이 숨기고, 포장했던 기억이 난다.

     

습관은 굳은 결심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설사 그렇다 해도 어릴 때 습득된 일부 습관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굳어버려 그 사람 자체가 돼 버렸다. 성향이나 인성 같은 것도 일종의 그런 종류라 생각한다. 흔히 드러나는 사소한 습관이나 나쁜 버릇은 누군가가 옆에서 충고하거나 일깨워 준다면 ,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습관인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판단하기 어렵다. 내가 한 행동도  마찬가지라 여겨진다.

     

꼭 필요할 때 쓰지 못하는 물건은 아무리 가치가 있어도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모든 사물은 적재적소에 있을 때 제 값을 한다는 상식이 말해주듯, 내가 필요했던 물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찾을 땐 나타나지 않다가 우연히 무엇을 보다가 그것이 눈에 띄었다. 웃음이 났다. 꽁꽁 싸둔 줄 알았던 그 물건이 어이없게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에 버젓이 놓여있었다. 그때의 허탈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다.

편견이나 고정관도 정형화된 틀 속에 생각을 투입하는 것이라  볼 때, 매번 같은 생각을 하는 사고의 습관 같다.  귀한 것은 잘 두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일으킨 해프닝이었다.  앞으로 이런 일로 속상하거나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좋든 싫든 어쩔 수 없는 습관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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