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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an 19. 2019

그녀가  사는  방법

  그녀는 종종 현실의 삶이 순간의 꿈처럼 느껴졌다. 특히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 몽롱한 상태에서 그런 느낌이 더 강했다. 그녀는 누운 채로 한참 생각에 잠겼다. 감각을 통해 실재하는 세상을 인식할 수있지만, 그것이 진짜인지,허구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어찌보면 모든 것이 그녀 자신으로부터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눈을 감았을 땐 모든 사물이 지워졌다. 억지일지 모르지만, 그녀는 그녀의 의식 밖에 사물들은 실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 자신이 죽고나면 그런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을 테고, 의미가 없는 것은 그녀에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그녀는 상상해 보았다. 아니 가정해 보았다. 만약 그녀가 몸 담고 있는 세상이 허구라면?  눈 앞에 존재하는 것들이 한낱 그림자에 불과하다면 실체는 어디 있는 것일까?  의심을 품을수록 모든 게 모호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그녀는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를 읽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그의 형이상학적이고 심오한 철학 사상에 매료됐던 것은 아니다. 사실 그녀는 철학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다만 그 이야기가 자신이 느끼는 어떤 감정과 유사하단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실제 철학적 의미와 해석이 다를지라도 그녀는 상관 없었다. 그저 현상의 세계를 동굴에 비유했다는 게 그녀의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어쩌면 그녀 자신도 동굴 속 죄수처럼 무지하고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굴 밖이 어떤지도 모른 채, 한쪽 벽만을 바라보며, 빛에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 꼭두각시가 실체라고 믿는 어리석은 존재는 아닐까 하고.

 그녀는 가끔 꿈이 현실처럼 생생하다고 느꼈다. 꿈 속에서도 감각을 느끼며, 감정에 복받쳐 흐느끼기도, 화를 내기도, 낄낄거리기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 한동안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이 아닐까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현실과 꿈을 분간 못하는 것은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시인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녀는 진실과 관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이 사실이 돼 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그녀는 자신이 현실적 삶에 의구심을 갖는 것이 삶의 분명한 목표가 없어서, 또는 현실 도피나, 어떤 환상의 추구로 인해 발생된 문제는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그처럼 분별력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것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안고 사는 문제라 생각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일까. 그녀는 이제껏 살아온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았다.

  그녀는 하루의 반 이상을 독서와 사색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가끔 집에서 가까운 개천가 주위를 걷는다. 그녀는 사람들과 거의 왕래가 없는데, 어쩌다 만나는 사람들은 한정돼 있었다. 예전에 같은 일을 했던 사람 중 한두 명, 대학 동기 한두 명 정도이다. 그녀가 그나마 자주 가는 곳은  근처 구립 도서관이다. 그곳에서 하루를 다 보내고 어둑해진 이후 귀가하는 날도 꽤 많았다. 그런데 그처럼 왕성한 지적 활동에도 그녀는 늘 뭔가 결핍돼 있었다. 그것은 조화롭지 못한 그녀의 생김새에서도 눈치챌 수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번득이는 눈을 제외하곤 그녀의 육체는 전체적으로 무기력해 보였다.

  그녀가 자신의 문제점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한 것은 처음에 언급됐듯이 삶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것은 마치 형상화되지 못한 관념과 추상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아우성대며 그녀의 정신을 혼란하게 만드는 것과 같았다. 구체성이 결여된  삶은 당연히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이다. 그림자로 뒤덮힌 허상, 무수히 왜곡된 형상 속에서 실체를 분별하는 능력은 정신과 육체가 합해질 때 가능한 일이란 걸 그녀는 인식하고 있었다. 부조리한 삶에 저항하는 길은 부조리한 삶 한 가운데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진창에 빠지기 싫어 고고한 정신만을 추구한다면 결코 삶은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깨닫기 시작했다. 육체의 노동, 실천이 결여된 삶은 꿈처럼 아득하고 허무한 것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실현될 수 없는 꿈은 곧 사라져버릴 것임을 그녀는 알았다. 그럼에도 꿈을 꾸고 싶었다. 가려진 장벽 뒤에 실체를 그녀 마음껏 상상하고 원하는 모습으로 그렸다. 그것이 허상임을 알면서도. 그리고 두려워 그것을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속에 가두었다. 죄수가 동굴을 나설 용기가 없었던 것처럼, 아니 선각자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 독선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이제 그녀는 사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안개에 가려진 길을 찾기 위해선 직접 안개 속으로 들어가야 함을. 비록 안개 속 세상이 두렵고 낯설다 해도, 막연한 것들과 직접 대면할 자신이 없다 해도, 용기를 내겠다고 다짐한다. 그녀는 분명히 깨달았다. 동굴 밖으로 나가 본 사람만이 삶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으리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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