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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an 21. 2019

경청한다면

  작년 말의 일이다. 평소 잘 아는 지인들과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식사가 끝나고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년말이라 그런지 카페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근무하는 직원에게 인원이 많은데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답변이 없을 뿐더러 계속 주문만 받고 있었다. 다른 직원도 있었지만 처음 그녀에게 말한 터라 다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또 기다리란 말만 되풀이 하였다. 지인 중에 한 명이 항의하자 그 직원은 '언제 차를 시켰나요?' 동문서답을 했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말문이 막혔다. 우리는 불쾌해져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나왔다.

 당시 나는 딸 또래의 카페 직원을 보면서 안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쉴 새 없이 많은 사람들의 주문을 받고, 계산하는 그녀가 무척 힘들고 고단해 보였다. 아마도 알바생일지도 모른다. 정신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보수를 받고 일을 하는 만큼 책임 있는 태도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물론 그녀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다만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을 뿐이다.

 살다보면 흔히 겪는 일 중 하나가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흘려 버리고 후에 엉뚱한 오해를 하는 경우이다. 말을 하는 사람은 나름 진심을 다해 힘들게 얘기하는데 상대가 경청하지 않는 태도를 보일 때, 당혹스러울 뿐만 아니라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자존심까지 상한다.

 그런데 경청을 하지 못하는 문제는 주의력 결핍에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마음에서 생기기도 한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생각은 큰 소리로 거침없이 주장하지만, 상대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는 흥분하며 화를 낸다. 그 바탕에는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자만과 독선, 그릇된 아집이 깔려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전 어진 임금을 보면 권력의 중심에 있지만, 그 힘을 과시하거나 일방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 세종대왕 같은 분은 신분이 낮은 상대라도 그를 통해 배울 점이 있음을 알고, 그의 말을 경청하였다. 듣는 것의 중요성을 아는 지혜로운 지도자였다. 경연과 서연이란 제도도 그런 취지에서 생겨났다. 지금도 지도자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가 경청임을 잘 알고 있다.

 아이들과 수업할 때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잘 듣는 아이들이 모든 면에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 책을 독해하는 능력 뿐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비판하고, 판단하고 대처하는 능력도 우수하다. 토론할 때도 경청을 잘 하기에 논쟁의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도 당당하고 분명하게 피력할 줄 안다. 주의 깊게 듣는 만큼 상대를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또 그것을 잘 활용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경청을 잘 하면서 얻는 가장 큰 가치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이라 생각한다.

 문득 <모모>가  생각난다.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 모모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들어주는 것도 돈을 내야 하는 시대를 보면 모모는 어떤 생각을 할까? 순간 궁금해진다. 경청은 단순히 집중의 문제라 여겨지지 않는다. 인간의 이기적 본능은 이해타산적이라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엔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경청은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좀 더 가치 있고 인간적인 행위, 그 근간엔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더불어 공감하여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성숙한 인간애가 내재돼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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