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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an 21. 2019

글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

 글이 무척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따스한 음성으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고즈넉한 산길의 다정한 새소리처럼,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을 어루만지듯, 그렇게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감정은 거칠고 변덕스러워 폭풍 같은 격정을, 때론 격렬한 슬픔을, 사랑의 아픔을 몰고 온다. 온갖 감정들은 메마름을 두려워하는 나를 유혹하여 무엇이든 끄적거리게 만든다. 하지만 한바탕 감정의 회오리에 의존해 써 내려간 글은 마치 찌꺼기가 가라앉지 않은 엿물처럼 정제되지 않아 혼탁하다. 유치한 감정의 노예가 된 글을 보면서 스스로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차분하고 냉철한 마음으로 쓰는 글은 감정이 배제된 무미건조한 글이라 생긱한 적이 있었다. 영감을 얻고 일사천리로 써내려간 천재 시인이나 문학가들은 선천적으로 특별한 사람들이거니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으로서, 그런 기분은 어떤 것일까?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예술가는 이래야 해’ 라는 공식이 있었다. 세상에 비극과 불행은 전부 짊어진 듯 고뇌에 찬 표정, 그것을 견디기 위해 폭음을 하고, 줄담배를 피며 마치 오늘만 살 것 같았다.

 그 광기어린 모습은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닮았다. 대부분 예술가들은 현실에 가장 민감한 존재이기에 그런 특성이 생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글이 유치하거나 난삽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감정 과잉을 절제의 언어로 다듬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재시인 '이상'만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볼 때 그의 삶은 무척 방탕하고 무절제했다. 하지만 그의 시는 감동을 준다. 「거울」에서 현실과 이상의 자아가 화합할 수 없음을 괴로워하는 그가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의 절제된 감정이 더욱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갈수록 글을 쓰는 게 어렵다. 어떤 때는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상투적이며 진부하게 느껴진다. 진열장에 쭉 늘어선 옷들은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내 것이 될 수 없다. 스스로 재단하고 정성껏 바느질을 해 몸에 맞게 입어야 진짜 내 것이 된다. 같은 낱말과 문장도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듯 글도 추상과 관념이 고유의 경험에 의해 진정성 있게 형상화될 때 감동을 줄 것이다. 결국 글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절제된 언어 속에 내재된 진실함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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