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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Feb 08. 2019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

 추운 날씨에 따뜻한 봄이 기다려지듯,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곳에선 평화가 오길 애타게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봄은 자연의 섭리이기에 때가 되면 자연스레 다가오지만, 인간세계의 봄은 요원하게 느껴진다. 언제부턴가 핵미사일, 항공모함, 첨단무, 듣기만 해도 어무시한 강력한 살인도구들이 경각심을 일깨우지 못하는 것은 설마 하는 안일함과 오랜 시간 전쟁과 평화의 대치 속에 갈등이 습관처럼 굳어져 무감각해진 결과는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전쟁의 참혹함은 그것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인류가 겪었던 두 번의 세계대전은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송두리째 앗아갈 만큼 인간의 본성과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바꿔놓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는 전쟁의 비극을 직접 경험한 민족이기에 그 아픔이 특별하다. 그래서 잔인한 전쟁을 겪으며, 인종 박해에 고통스러워하는 어린 안네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가 열세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 나치를 피해 숨어 지내는 동안 쓴 일기를 보면 그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집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때 나치를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네덜란드도 1941년 나치에 점령당한다.


1942년 열세 번째 생일에 선물 받은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여준 안네는 그 후 꼬박꼬박 일기를 쓴다. 그녀의 일기를 통해 우리는 당시 그녀의 가족이 처했던 상황과 주변의 일들을 잘 알 수 있다.  안네의 아빠는 잼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안네는 언니와 같은 유태인 중학교에 입학한다. 안네는 유태인이라 노란 별을 달고 다니며, 전차도 자동차도 탈 수 없고 모든 것을 차별 받아야 하는 슬픔을 얘기 하면서도 남학생이 자신을 좋아하며, 자신은 수다쟁이라며 아이 특유의 명랑함과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안네의 가족은 나치를 피해 아빠의 사무실이 있던 건물 4층으로 옮기는데, 안네의 가족 네 명, 펜던 씨 부부와 아들 피터, 치과 의사 뒤셀 씨까지 8명이 함께 살게 된다. 좁은 공간에 갇혀 살면서 불편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소리도 낼 수 없고, 불도 켤 수 없다. 아래층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의지해 근근이 먹을 것은 해결하지만 그나마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며칠 동안 양배추와 썩은 감자만 먹고 지내기도 했다. 안네는 생리를 시작하면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지만 당장 생리대가 걱정이다.

     

 좁은 공간에서의 생활은 모든 관심을 바깥이 아닌 안으로 향하게 한다. 폐쇄적인 생활은 자신에게 골몰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행동도 유심히 관찰하게 만든다. 안네는 일기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성숙해진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뚜렷이 깨닫는다. 현실의 삶이 불안정하고 위험하기에 꿈은 더 절실한지 모른다. 작가와 기자가 꿈인 안네는 스스로 계획을 짜서 공부하고 독서도 많이 한다. 틈틈이 동화와 소설을 써서 은신처 사람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또 여자로서 피터와 함께 하는 시간의 설렘도 감출 수 없다.

     

 인상적인 부분은 안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행동이다. 다섯 명의 어른들을 보면서 안네는 자신이 생각했던 어른들이 아님을 깨닫는다. 어떤 부분은 아이들보다 못하다는 것, 늘 싸우는 펜던 씨 부부, 짜증이 심한 엄마, 욕심 많은 뒤셀 씨에게 실망하지만 아빠만은 존경한다. 아이들 앞에서 언제나 권위를 내세우고, 잘난척하는 어른들의 태도를 꼬집는 안네의 글을 보며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워진다.


 아이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른들이 구해 줄 것이라 믿지만, 무책임한 어른들은 아이들의 순수하고 맹목적인 기대를 짓밟는다. 힘 없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어른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 죄 없는 아이들을 전쟁의 희생자로 만든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안 밖으로 벌어지는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안네가 죽어가는지,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하게 된다.


 풍부한 감수성과 확고한 견해를 갖고 세상을 바라본 ‘안네의 일기’는 어느 뛰어난 문학 작품보다 생생해서 다양한 감정을 일으킨다. 들킬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과 열악한 환경이 안타깝고 슬프기도 했지만, 그런 중에도 명랑함과 순수함을 잃지 않는 소녀 특유의 감성이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미소 짓게 만든다.


전쟁이 끝나면 책으로 내고 싶다던 안네의 마지막 일기는 1944년 8월 1일에 은신처가 발각되면서 끝을 맺는다. 차마 입에 담고 싶지 않은 곳,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안네는 옮겨간 베르겐벨젠 강제 수용소에서 장티프스에 걸려 사망한다. 그 후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빠에 의해 「안네의 일기」는 세상에 나오게 된다.

     

 살다보면 전쟁처럼 고통스럽고 비참한 환경에 놓일 때도, 죽고 싶을 만큼 절망하거나 좌절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현실은 늘 전쟁 중인지 모를 일이다. 그럴 때 (안네의 일기)를 떠올린다면,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도 희망과 꿈을 잃지않고 살았던 어린 소녀를 기억한다면, 다시 힘을 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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