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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l 22. 2021

꽃 진 자리

 


 버스를 탔다. 취객 같은 정오의 볕이 다리 위로 따갑게 앉았다. 눈꺼풀이 무겁고 정신이 몽롱하다. 깜빡 졸았던 모양이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다. 부리나케 일어나 하차 벨을 눌렀지만 결국 한 정거장을 지나 내렸다. 더욱 뜨거워진 취객도 같이 내려 이번엔 목덜미를 잡는다. 양산을 펴서 뿌리치고, 작은 그늘 속에 숨었다. 왔던 길을 힘겹게 거슬러 올라갔다.



 삼백 미터쯤 걸어서 목적지에 다다랐다. 약속 장소는 대로변에 있어 찾기 쉽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삼층으로 된 건물인데, 일층은 석이 몇 개 없어서 앉아서 시간을 보낼 만한 환경이 못 되다 보니, 암묵적으로 주문만 하는 곳이 됐다. 이층은 밖으로 나가야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다. 땅이 비싼 시내이다 보니 최소한의 공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누리려는 자본주의적 발상으로 지어진 상가 건물들이 거의  없이 붙어 있었다.


 빡빡한 작은 유리문을 열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됐는데, 친구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행이다. 습관처럼 누군가를 만날 때 상대보다 먼저 도착해야 안심이 되었다. 상대가 나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그를 기다리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커다란 테이블과 푹신한  팔걸이의자가 있는 창가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의자 푹 쌓인 채로 눈을 감았다. 예전 기억들이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렸다.



며칠 전, 오랜만에 대학 문창과 동기였던 은주로부터 전화가 다.  대학 시절, 잠시 그녀와 함께 연극 동아리 활동을   적이 있었다. 내가 연극에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그녀 때문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 경우라 할 수 있다.  당시 은주는 연극반에서 꽤 인기가 많았다. 연극에도 재능이 있었지만, 매력적인 외모도 한몫했다. 그때는 그런 그녀가 부럽기도 자랑스럽기도 했다. 함께 어울리 것이 좋았다.


 대학 연합 연극 동아리에서 이전보다 큰 규모의 공연이 계획되었다. 공연장도 크고,  자연히 관객 수도 이전보다 훨씬 많을 것이기에 기대가 컸고, 그만큼 준비도 더 철저히 했다.  작품으로 햄릿이 선정되었고, 은주가 오필리어 역을 맡게 되었다.  아버지를 죽인 햄릿을 원망하고 미워하면서도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오필리어의 고뇌에 찬 내면을  연기하는 일이 무엇보다  어렵고 힘들지만, 수준 높은 연기로 평가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은주는  공연 날이 다가올수록 초조와 불안에 시달렸다. 무척 예민해졌고, 감정 기복도 심해졌다. 연습을 하면서 미쳐가는 인물에 몰입돼 진짜 미쳐버릴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다 공연을 며칠 앞두고 탈진하여 쓰러졌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심신 쇠약으로 급기야 입원까지 하게 됐다.  후  충격이 너무 컸던지 그녀 연극을 그만두고 말았다.


 은주말했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 두려웠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 시작하기 전에 지쳐버렸다고, 그래서 그녀바라던 여주인공 역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은주 때문에 공연에 차질이 생겼다고 비난하는 말들이 돌면서 은주는 또 한 번 시련에 부딪혔다.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하고 , 책임감 없는 인간으로 비친다는 사실에 자존감이 무너졌다 고백했다. 은주의 입장은 전혀 헤아리지 않는 것이 가혹한 현실이었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졸업 이후 한동안 은주와 자주 만났다.  마음이 맞는 동기와 선배들이 어울려 다녔다. 몇 명은 취업 준비를 하고 몇 명은 글을 쓴다고 여행을 다니거나 일정 기간 칩거를 했다. 제일 먼저 결혼 소식을 알려 온 건 은주였다. 신랑 될 사람이 엘리트 재미 교포이며 부모님 뒤를 이어 사업채를 물려받을 거라 했다. 식은 미국에서 치른다고 해서  아무도 가지 못했다. 나는 마음으로나마  진심으로 축하했다. 친구가 떠나가는 것은 슬펐지만, 그녀가 행복하길 진정 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몇 년 전에 은주를 다시 만났다. 나도 가정이 생기고, 아이들도 성장한 터라, 이제 좀 자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때, 우리의 재회가 이뤄져서  꿈만 같았다. 다른 친구들과도 왕래가 없었던 그녀였기에 당연히 타국에서 잘 살고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예전 연극 속 오필리어처럼 비련의 여주인공이  있었다. 드라마틱한 그녀의 삶이 믿기지 않았다. 사기꾼을 만나 결혼하고,, 배신당하고, 가정폭력에 시달린 세월 동안 그녀의 모습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깜짝 놀라 소릴 지를 뻔했다.  그녀가  어느새  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생각에 골몰한 나를 한동안 지켜보았던 모양이다.

" 부르지 그랬어, "

" 오랜만에 너 그런 모습 보니, 좀 뭉클했어. 잠시지만 예전으로 돌아간 거  같았거든."


친구의 마른 손을 잡았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몇 년 전보다 사정이 나아졌다고 했다. 이혼을 하고 자유의 몸이 되니 좋다고 했다.  아이가 둘인데 힘들게 커서 일찍 철이 들었다고, 지금은 각자 밥 벌이는 하면서 산다고 했다


우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 얘기했다. 아니 별로 한 얘기도 없는데 창문 밖이 희끄무레 변해 있었다. 지나간 일들이 꿈처럼 아득했다. 분명 모습은 변했는데, 꽃 같던 시절은 지났는데, 그때를 말하고 있는 우리가 왜 꽃처럼 느껴지는지.  


친구는 시간을 확인하고, 머뭇거리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참 그렇지, 옛 일에 젖어 오늘 만나는 목적을 잊고 있었다. 친구는 보험설계사이다. 그녀는 지금  삶에 만족하고 있다. 고통 속에 살았던 날에 비하면 현재의 삶은 천국이라 했다. 숨 쉬는 순간순간에 감사한다고. 나는 그런 친구가 예전처럼 자랑스러웠다. 친구의 설명에 귀 기울였다. 이미 있는 것도 있지, 앞으로 필요할 것도 많을 것 같았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피는 시절에 만났던 우리가  이제 꽃 진 자리에서 다시 만나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회에 목이 메어왔다. 나는 글썽이는 눈으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는 양 짧은 말을 써본다.  "구야, 우리  꽃 진 자리에 다시 싱싱한 잎이 돋고. 튼실한 열매가  맺히겠지,  그러니 서러워 말고 기뻐하자,  삶에 감사하자,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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