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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l 20. 2021

소외란 그늘


그 사람은 항상 그곳에서 물 먹은 파지처럼 늘어진 채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머리카락은 거친 들판에서 제멋대로 자란 풀처럼 마구 뒤엉켜있었고, 여름인데도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있었다. 몸에서 나는 악취는 가까이 가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로 심했다. 한 번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측 건물의 아래층 가게들 중 비어 있는 곳 앞에서 몸보다 큰 시커먼 겨울 파커를 입고 웅크려 있던 그를 커다란 짐짝으로 착각하여 눈길을 주었다가 바로 경악과 두려움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매일 지나가는 시간이 일정했던 그녀는 그를 보면서 왠지 모를 아픔과 연민이 스멀스멀 일어나는 것을 애써 외면했다. 더운 여름에 겨울 옷차림을 하고 며칠도 버티지 못할 텐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분명 복지 단체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을 텐데,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계속 저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인지 의심이 갔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니 무료 급식소라든지, 다시 서기, 일자리 상담소와 같은 단어들이 무질서하게 떠올랐다.


 얼마 전 그녀는 함께 일하던 동료를 통해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그녀의 지인 중 젊은 청년이 있는데 참 딱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말을 서두로 그가 행방이 묘연하다는 말을 했다. 그는 20대 중반인데 부모가 급작스레 돌아가시고 할머니마저 치매에 걸려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살고 있던 집마저 경매에 넘어가서 청년은 오갈 데가 없어진 것이다. 청년은 주유소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두절돼 찾아갔더니 이미 그만둔 후였다. 그러면서 동료는 실종신고를 해야 하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막혀왔다.



 그 젊은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실종신고를 하면 찾을 수 있을까, 어린아이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인데, 경찰서에서 뭐라 할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자동차 경적이 요란하게 울렸다. 생각에 몰입한 나머지 그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빨간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그녀는 앞만 보고 뛰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동대문에서 함께 옷 장사를 했다. 어머니가 직접 디자인한 옷은 인기가 많았다. 매출이 늘자 한때는 제품 공장까지 인수해 직원들을 두고 일을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IMF가 터지고 나라가 경제 위기에 봉착하면서 그녀 부모님 사업도 무너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아버지는 술을 달고 살았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졌고, 경찰서에서 전화가 오면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를 그녀와 어머니는 부축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그녀의 아버지가 비명횡사한 날은 그녀가 고등학교 졸업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한통의 전화를 받은 그녀 어머니의 안색이 파리하게 변했다. 그때 그녀는 직감했다. 아버지의 운명을. 경찰 보고서에는 그녀의 아버지가 한파에 소주 3병을 마시고, 어느 공원 벤치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릴 때 부모님이 바빠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많았지만 부모님이 쉬는 날이면 놀이공원이나 시외로 나가 가족이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 힘 있고 후덕했던 아버지를 그녀는 좋아했다. 그런데, 마지막 모습은 행려병자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졸업장은 우편으로 받았다. 그 후 대학을 포기한 그녀에게 어머니는 간곡하게 부탁했다. 대학은 꼭 가야 한다고, 학비 걱정은 하지 말라고, 자신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해주겠다고, 그녀도 고집을 부렸다. 절대 갈 수 없다고, 집안 형편을 보라고, 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잊었냐고, 앙칼지게 말했다.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의 목숨을 헛되이 만들지 말라고, 아버지의 생명보험, 딸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라는, 그 말에 그녀는 무너졌다.


 깊은 상념에서 깨어난 그녀는 지하철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조금은 식은 것 같았다. 그녀는 시야를 가리는 행인들 틈새로 무언인가 열심히 찾는 자신을 느꼈다. 뭔가 의미심장한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나타났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 그 기분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소외된 그늘 속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시들어 가는지를.


그녀는 손에 들린 쇼핑봉투를 힘주어 꽉 잡았다. 그녀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얼마 만에 고동치는 심장소리를 듣는지 그녀 자신도 놀랐다. 그가 있었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세상을 등지고 누워있는 그의 옆에 조용히 봉투를 놓았다.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제발 힘내세요.’  그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돌아서는 등 뒤로 분명 어떤 기척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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