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가 있던 다방이 아직도 그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세상일이란 변하기 마련이니 아무래도 좋다. 설령 없어졌다 하더라도 세월 탓이려니 한다. 십 년이란 세월은 강산도 변하게 한다는 말을 빌리자면, 강산이 네 번은 바뀌었을 테니.
이제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다방이 생각난 것은 순전히 흑인 가수이자 피아니스트인 로베타 플랙이 부른 영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OST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노래를 다시 듣게 되면서였다.
허스키하고 호소력 짙은 여가수의 목소리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우수 짙은 얼굴이 생각났다. 동시에 내가 드나들던 그 시절의 음악다방 DJ의 음성과 모습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의 이름은 확실치 않지만 그의 별명은 분홍신이었다. 아마도 무슨 성에 이름이 홍신이었는지 싶다. 그는 작은 키에 마른 체격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시험 결과를 기다리던 시기였다. 이제 대학생이 되고 어른으로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와 들뜬 마음에 친구들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기성사회에 대한 궁금증을 직접 경험해 보리란 의지와 열기로 충만해 있었다.
친구들과 찾게 된 동네 조그만 다방, 작은 부스 안에서 앨범을 고르던 그에게 신청곡을 내면 부드러운 목소리로 짧은 멘트를 하곤 했다. 원하는 곡이 없을 땐 피식 웃으며 오늘은 들을 수 없으니 다음 곡을 신청해 달라며 우리를 향해 귀여운 윙크를 했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난 늘 그 다방에 가면 로베타 플랙의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을 신청했다. 그도 언젠가부터 나를 보면 알아서 그 노래를 틀어줬다. 그때 마음에 나를 위해 누군가 어떤 노래를 틀어준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레며 뭉클해지기까지 했었다.
그 시절을 회고하면 풋풋하고 낭만적인 영화 한 편을 만난 듯하다. 빨리 지나가길 바랐던 시간이었지만 문득 돌아보면 모든 게 아름답고 애절했음을 느낀다.
청춘이란 기차를 생각했다. 지나가는 풍경을 다 맞이했음에도 잠시 머문 여러 개의 간이역만을 기억할 뿐이다. 가야 할 종착역을 향해 쉼 없이 타고 내리고 했기에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표현할 수 없는 말은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기분에 따라 의미 없는 것들도 유의미하게 포장된다는 것은 어쩌면 삶의 특권인지 모르겠다. 세상물정을 몰랐던 시절의 희미한 기억들이 왜 그리 찬란하고 그리운지, 거기에 덧칠된 우울마저도.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그때와 달라진 것이 뭔지 생각해 본다. 변한 것은 많다. 물질적 변화가 우리 삶을 바꾸어 놓고, 새로운 것들의 의해 구시대의 것들이 많이 사라져 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과 마음이 그것들과 함께 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질 뿐이었다.
위안이라는 미덕은 삶에 붙여진 시간의 흔적들이 기억의 방을 만들도록 허용했다. 그것이 불안정하고 얄팍하여 왜곡이라는 견고한 방이 잉태되고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수없이 반복되는 기억의 변색을 언제나 즐길 수 있도록, 사실이 중요하지 않은 지 오래된 것처럼.
어떤 기억은 언제나 내편이다. 꺼내고 싶을 때,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언제나 그곳에 머물러 있다. 기억의 저편은 희미하고 아스라해서 화려하고 아름답게 덧칠할 수도 있고 원하는 대로 그리고 채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어딘 가엔 어떤 색깔도 삼켜버릴 캄캄한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
빛바랜 기억을 찾아 헤매거나, 흩어진 조각을 맞추어 아름답게 의미를 부여하며, 아득한 시간을 재현하며 즐겼던 놀이도 이제 퇴색됐다.
지금은 주어진 삶을 헛되게 살 시간적 여유가 없음을 느낀다. 왜곡된 기억으로부터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한 순간의 삶이라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 마치 기억과의 사투를 벌이는 마음으로 메모를 하고 기록을 남긴다. 잘못된 기억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