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지개 경 Mar 24. 2018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달과 6펜스」는 영국작가 서머싯 몸이 쓴 소설로, 타이티 섬으로 간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삶을 형상화하였다. 책을 다 읽고 제목이 주는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예술가에게 세속의 굴레는 자유로운 영혼을 억압하는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술을 향한 그의 욕망과 열정의 간절함은 세속의 그 무엇도 방해가 되지 못했다.


‘달과 6펜스’라는 상충되는 두 세계 안에서 철저히 한 세계만을 추구한 그는 물질의 구속을 거부하고, 도덕이나 관습, 사회의 이목도 전혀 개의치 않을뿐더러 타인의 감정에도 냉혹하리만치 무관심했다.


극히 평범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전혀 딴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화자가 묘사한 인물 찰스 스트릭랜드는 증권 중개인으로  처자식이 있는 평범한 영국의 중산층이다. 그는 성실하지만  따분한 인물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가족에게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간다.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스트릭랜드 부인의 부탁으로  그가 묵고 있는 파리의 허름한 숙소로 찾아가는데, 그가 바람이 났을 거라는 주변의 추측과 달리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책의 서두에서 화자는 스트릭랜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비교적 상세히 피력해 놓았는데, 작가인 몸 자신의 생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설의 극적인 성격에 따라 실제 폴 고갱의 삶과 차이는 있을 지라도 당시 무명이었던 천재 화가가 사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그에 대한 많은 비평이 쏟아져 나오고, 생전 기이하고 끔찍한 일이 많았던 그의 인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서술자는 그가 괴팍하고 거칠은 성격으로 친구보다 적이 많았던 탓에 그에 대한 사실이 왜곡된 점도 많았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예술은 정서의 구현물이고 정서란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는 사실을 들어 그의 작품의 개성과 독창성에 위대함을 부여하고 있다.


스트릭랜드의 부인 에이미는 사교적이고 고상하며 예술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속물적 근성을 갖고 있으며, 진실로 예술을 이해한다기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의식하며 자신을 과시하기에 바쁘다.

화자는 에이미를 비롯하여 책 속에 나오는 여자들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남자의 포부나 꿈을 방해하는 속 좁은 존재처럼 묘사하고 있다. 스트릭랜드를 헌신적으로 돌봐주고 열렬히 사랑한 더크 스트로브의 아내나 타이티 혼혈인 아타 또한 남자의 원대한 꿈을 위해 희생된 수동적 존재처럼 여겨진다. 이는 당시 영국사회가 여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더크 스트로브란 인물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무척 인간적이고 다정다감하며 타인의 불행을 지나치지 못하는 박애주의자이다. 그런데 그는 항상 주변의 웃음거리가 된다. 그가 베푸는 친절, 관용, 희생 따위가 천재성을 지닌 특별난 인간들에겐 한 푼의 가치도 없을까?  작가는 스트릭랜드의 입을 통해 말한다. 스트로브와 그의 부인이 천재에게 베푼 호의는 스트릭랜드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이라고, 그들은 균형 잃은 생각과 감정으로 불행을 자초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호의와 희생으로 스트릭랜드는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고마움조차 없단 말인가?  일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책은 스트릭랜드를 통해 특별한 천재는 일반 상식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암시한다. 그는 자신의 죽음조차 무관심했다. 죽음에 초연한 그가 자신을 살리겠다고 귀찮게 하는 그들에게 감사해야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의 입장에선 그가 추구하는 세계만이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다. 평범한 시각에선 그의 태도는 무척 이기적이고 냉소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스트릭랜드의 멸시를 받으면서도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의 재능을 부러워한 평범한 화가 더크 스트로브, 마치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부러워한 살리에르처럼 어릿광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천재를 물질적으로 지원하면서 대리 만족을 한 것일까? 그는 예술에 대한 뛰어난 안목은 있었지만 예술을 향한 열정과 고뇌하는 정신은 부재했던 것이다.


작가가 스트로브처럼 착하고 이타적인 인물을 어리석게 풍자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이란 사회의 윤리나 도덕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위대한 작품은 때론 사회의 관습, 규율이나 통념의 한계를 극복할 때 탄생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술과 현실의 괴리는 무척 크게 느껴진다.


스트로브처럼 현실에 안주하고, 영혼 없는 그림을 팔아 물질적 풍요에 젖고 쉽게 명성을 얻으려는 당시 사이비 예술가들을 스트로브에 빗대어 비판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한 참 흐른 후 화가는 타이티 섬을 가게 되고, 그 곳에서 말년 스트릭랜드가 어떻게 살았는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해 듣는다. 자신이 직접 본 것이 아닌 전해 듣는 형식을 통해 그의 삶의 신비성과 모호성이 더욱 부각되고, 독자로 하여금 현실과 동떨어진 원초적 세계에서 그가 관능적이고 탐미적인 예술을 마음껏 표현했으리란 추측을 하게 만든다.


스트릭랜드는 갖은 고생 끝에 타이티 섬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섬의 원주민 혼혈소녀 아타와 함께 산다. 화자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가 섬에 정착하고 몇 년 간 생애 가장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타의 집은 섬에서도 가장 깊숙한 외지에 있었는데, 원시림이 우거진 그곳은 문명과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곳이었다. 아타는 스트릭랜드의 아이를 둘이나 낳지만 그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는 것이 없으며, 그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했다. 스트릭랜드는 평소 여자란 남자를 구속하는 방해물이며, 끊임없이 남자의 관심과 사랑만을 갈구하는 귀찮은 존재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아타는 다르게 생각한 것 같다. 그야 그녀가 자신의 그림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묵묵히 그를 위해 헌신만 했으니 무슨 불만이 있었겠는가, 나병에 걸린 것을 알았을 때는 그녀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한다. 그도 인간이기에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나보다.  


화자는 스트릭랜드를 진찰했던 의사로부터 그의 죽음에 대해 전해 듣는다. 그가 문둥병에 걸려죽기 일 년 전에는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는데, 그럼에도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더욱 강렬해 오두막 집 벽면에 사람이 그렸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불가사의한 그림을 남겼다고 하며, 의사는 그 그림을 보고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마치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세계를 엿본 화가의 그림이었다. 아타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트릭랜드의 유언에 따라 그림이 있는 오두막을 불태우고 만다.


스트릭랜드는 실제 폴 고갱의 모델이지만, 그의 삶과 다른 면도 많다. 고갱은 심장병과 영양실조, 매독으로 고생하다 죽었다. 그리고 금융업에 종사한 것은 비슷하지만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하여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자 부인과의 갈등이 깊어져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물론 소설은 픽션이지만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독자에게 생생함과 흥미를 준다. 그리고 상상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하며, 그 속에 삶의 교훈과 진실이 내재돼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가상의 인물 스트릭랜드에 몰입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폴 고갱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 인해 실제 화가가 더 미화됐을 수도 있고, 사람들의 관심에 일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예술혼이다. 그것은 어떤 분야건 지난한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위대한 작품은 한 육체와 영혼의 불사름 없인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의 이목도 명예도 부와 권력을 위시한 일체 세속적인 것을 초월해, 어떤 절박함이 그들을 예술의 세계로 인도했을 것이다. 화자가 늦은 나이에 왜 그림을 시작하려는가? 물었을 때 스트릭랜드는 핵심을 관통하는 말을 한다.


'난 그려야 해요.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허무와 슬픔의 변주, 아라이의 (색에 물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