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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Apr 14. 2018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문학적 건망증)

  

책꽂이에 있는 책들을 쭉 훑어본다. 제목이 익숙하고 한 번쯤 읽었던 책들이다.  어느 책을 꺼내 대충 넘겨본다. 노란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여백에 뭐라 써놓은 것도 있다. 다시 보니 대충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짐작은 간다.

훌륭한 책이라고 검증받은 명작은 나름 많은 교훈과 감동을 준다. 읽는 순간 깊이 공감하며  삶의 자양분으로 삼겠다는 다짐도 하고, 어떤 책들은 일정 부분 나에게 자극 되고, 삶의 깨달음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 한 권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는지 스스로 물어본다면 그렇다 할 자신이 없다.


나의 소심하고 예민한 문학적 감수성에  위안이 되고 용기를 준 책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문학적 건망증'이다.  엄청난 독서가인 작가는 자신이 읽은 책을 다 기억할 수 있을까?   


작가는 독서를 할 때마다 그 속에 담긴 완벽한 문장과 명확한 사고의 흐름에 경탄하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지만. 글을 쓸 때는 정작 책 제목이나 저자, 심지어 내용까지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유명한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의 경우 독서를 지도하고 있는 입장에서 많은 책을 매번 다시 읽을 수 없다. 반복되는 부분의 내용은 다 알고 있지만 그 외의 내용은 세세히 기억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의문이 생긴다.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을 읽을 때 훌륭한 문장 하나하나에서 얻는 바가 크지만, 그것을 일일이 기억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행간의 의미를 곱씹어보고  공감하며, 감동에 젖어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기쁨, 앎의 뿌듯함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작가는 때때로 책 속에서 그 책을  읽은 다른 사람의 흔적을 발견한다.누군지 모르지만 작가가 감탄하고 동의하는 내용에 똑같이 밑줄을 긋고, 여백에 느낀 바를 써 놓은 어떤 이의 생각에 공감하면서, 그 사람과 깊은 정신적 유대감을 느낀다. 그리고 더욱 고무되어 책을  읽는다. 읽은 것을 반추하며, 뒤죽박죽 엉켜있는 의식에 길을 낸 후,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몇 줄 쓰려는 순간  이미 그곳에  낯익은 필체의 글이 작가의 생각 그대로 적혀있다, 앞서 읽은 이가 바로 자신이라고 깨닫는  순간 작가는 문학적 건망증을 실감한다.


이처럼 몰입해서 읽고 느끼고 깨닫는 것이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고, 시간이 지나 모든 것이 잊혀진다면 정말 허무한 일일 것이다. 자칫  ‘문학적 건망증’은  과거  책 속에서 얻었던 깨달음을 인지하려는 노력 자체가 부질없고 헛된 것이란 체념을 안겨 줄 수 있다. 하지만 실망은 하지 않는다. 깨달음이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섬광처럼 스쳐가는  자각, '맞아!'  한 마디로 족한

그 무엇이다.

시간이 흘러 기억 속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인가! 그것은 마치 언젠가 죽는다면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가! 라는 물음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오히려 문학적 건망증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만들어 준다. 책 속에는 여전히 미지로 남아 있는 낱말들이 수 없이 많으며, 어느 순간 쏟아져 나와 유성처럼 빛나는 의미를 던져주고 다시 망의 강으로 가라앉는다.


작가는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으로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용해돼 그 과정을 몸으로 확연히 느낄 수 없을 뿐이지 지속적으로  사고를 변화시키고 비판 중추를 자극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문학적 건망증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단지 독서의 과정에서 겪는 하나의 증세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독서는 느리지만 사람의 정신과 행동을 변화시킨다. 또 문학적 건망증은 글을 쓰는 사람에겐 축복받은 병인데, 위대한 작품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게 해 주며 표절로부터 그를 지켜준다.

역설적으로 문학적 건망증은 우리에게 더 큰 가치를 주는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능동적인 독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잘 기억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책 한 권을 독파하려면 정독을 하며,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것을 통한 깨달음과  순간의 느낌, 생각들을 꼼꼼히 기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글 속에 함몰되지 말고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혀 메모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런 부단한 노력의 과정을 통해 독자는 끊임없이 변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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