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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Apr 11. 2018

젊은 날의 초상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

  

<개밥바라기 별>은  저녁 무렵 서쪽에서 뜨는 금성을 '개가 밥줄 때를 기다리는 시간에 뜨는 별' 이란 의미로 붙인 이름인데 무척 재미있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새벽 무렵 동쪽에서 뜨는 금성은 샛별이라고도 한다.


제목은 누군가와 마주할 때 느끼는 첫인상과 같아서 가장 먼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제목이 상징하는 바를 떠올릴 때  별이 주는 이미지는 꿈, 자유, 순수, 풋풋함 같은 것이었다.


작가의 성장기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에는 황석영의 오늘의 모습을 만든 중요한 밑거름의 시간과 경험들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소설의 구성은 좀 특이하다. 씨실과 날실처럼 긴밀히 연결된 인물들의 목소리를 각자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여러 명의 화자를 등장시켜 같은 사건과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에 따른 생각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묘사하 각 인물의 내면 심리의 추이를 생생하고 섬세하게 전달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에 어떤 갈등과 고민으로 방황 나’ 새삼 생각해 보았다. 작가가 체험한 시대의 학교는 공부뿐만 아니라 복장, 두발 등 외형적 규제는 물론 규칙에 어긋난 행동, 표현의 자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학교가 수레바퀴 아래처럼 학생들을 지나치게 간섭하고 개성과 자유를 억압하고 짓누르며 획일화를 강요하고 의적 사고를 봉쇄해 버리는 불합리성에 대해 한 번쯤 문제의식을 갖고 비판하거나 또는 심각하게 고민은 해 봤는지 기억을 더듬게 된다. 

학교와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학생의 도리며 도덕적, 사회적으로  하자 없이 살 수 있는 길이라 여기며 부조리한 문제에 부딪혀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수동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책에 나오는 주인공 유준과 몇 명의 친구는 나름대로 주도적인 삶을 살고자 몸부림치며, 책에 쓰진 반듯한 이론으로 길들여지는 것만이 결코 진실한 교육이 아니라는 자각을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옛말처럼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긴다.     


준이는 베트남 중원 부대로 전출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베트남 파병을 확정 받게 된다. 그리고 파병 전 주어진 사흘의 휴가를 얻게 되고, 그 사흘 간 그는 자신이 떠나 온 시공간을 회상하며 추억과 과거의 그림자, 흔적을 찾아 여행을 한다.

그는 자신이 살던, 지금은 어머니와 동생이 살고 있는 한 저자거리의 가게로 간다. 그 곳은 그 시대 빈곤한 소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현장이며 그의 방황하던 날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그는 자신의 방이었던 다락방의 문을 열었다. 그 시절 끝없이 펼쳐진 하늘의 별을 보며 내면에 피어오르던 삶을 향한 자유와 꿈과 열정을 생각했다. 방벽에 쓰인 낙서에서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린다. 뭔가 표절의 냄새가 나고 유치하기조차 한 시구와 문구지만 그와 친구들의 낭만과 고민, 갈등, 격정이 뒤엉킨 시간들, 그 진지한 행로의 한 부분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흔적들이다.


그는 전쟁 통에 가족과 남쪽으로 오게 된다. 부모님은 교육을 받은 지식인으로 자부심이 강하다. 그도 무모님의 교육열에 모범생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그의 한부분엔 편견과 서열, 차별의식이 뿌리내린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반항과 경멸이 잠재하고 있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불합리하고 왜곡된 기존질서와 권의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항, 주체적 삶을 갈망하는 질풍노도와도 같은 모험과 열정에 휩싸이며 평범하지 않은 삶의 궤적을 만들어 놓는다.

그는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고 출세의 길이 예견된 잘 나가는 그룹이 거쳐야하는 코스를 마다한다. 진정한 삶의 가치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길이지 결코 관습과 세습이 만들어 낸 잘 닦인 길을 수동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소신을 갖는다.

그는 무단결석하며 자신과 예술적, 문학적으로 공감하는 친구들과 의기투합하여 자유롭게 여행도하고, 삶에 대해 진지한 토론도 하며 시 결과만으로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불합리하고 위선적인 틀에 박힌 학교의 제도적 권위에 도전하며 결국 이탈한다.


이런 의문이 든다. 결국 ‘학교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물을 재생산해내는 제도적 메카니즘 외에 그 무엇도 아닐까?' 그렇다면 제도권 밖에서 사회의 소중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간으로 학습되어진다는 것이 길들여지는 가축과도 같이 획일적이고 무개성적이며 창의성을 방해하는 속박으로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하는 문제 같았다.


주인공이 학교를 박차고 나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고자 한 것은 마치 스스로 알을 까고 나오는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새로운 세계에 대한 모험과 자유의 본질적 열망이 깊이 내재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 한 개인이 삶에 대한 자유와 존재 의미를 체험을 통해 통찰하고 깨달아가는 과정 또한 좁게는 사회와 넓게는 세계와의 대결과 갈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시대와 유리될 수 없는 개인의 삶은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따라 형성되며,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구축된 사회의 구조적 방향은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는 전후의 빈곤과 사회적 불안, 특히 정치적 권력을 선점하려는 집단 간의 세력 다툼과 외세의 간섭으로 주체성이 결여돼 있던 사회의 비극적 현실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실천적 지식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기존세력과의 다툼으로 더욱 혼란스러운 정국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 소모적이고 비합리적인 싸움 앞에서 준이는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아무런 잘못 없이 당해야 했던 친구의 믿어지지 않는 죽음 앞에서 인간실존의 한계를 느끼며 절망다. 그래도 인간실존의 가장 핵심인 앙가주망은 살아있는 동안 무언가를 향해 끝없이 행동하고 돌진해야하는 인간본질을 나타내기에 모순되고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더욱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역설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젊음, 누구나 한 번은 겪어 보았을 질풍노도의 시기, 젊음의 특권이기도 한 고뇌와 사랑, 꿈, 열정, 그 모든 것은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청춘의 한 때를 좌절과 고통 없이 어떻게 아름다웠다 할 수 있겠는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지 않고 그 끝에 맛보는 밝음의 가치를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라고 말이다.

  

삶을 돌아본다는 것,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받은 일이다.  책을 읽는 동안  과거를 반추하고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회의와 안타까움이 밀려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과거 또한 현재의 연속이기에 현재의 삶을 성찰하며  더 성숙한 삶을 만들어 갈 것을 다짐하게 된다.

  

간혹 모든 사람이 가는 방향과 다르다 하여 스스로 움츠려 들 때도 있었고 남들과 생각이 다른 자신을 분명히 표현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당당히 지적할 수 있는 용기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좋은 작품이 주는 감동과 정서의 여운은 어떤 강력한 무기보다도 더욱 강하게 사람의 마음을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슬프고 외롭지만 별처럼 잔잔한 물결로 마음을 아름답게 수놓은 소설의 가슴 뭉클함은 마음의 자양분이 돼 삶을 기름지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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