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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Apr 18. 2018

파트리크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

 

책 속 무한한 활자의 숲을 탐색하는 독자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나선 탐험가와 같다.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탐험가의 기쁨처럼 낯설고 생경한 활자 속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의미를 발견한 독자의 마음은 환희에 넘친다.


책을 통해 얻는 깨달음은 형언할 수 없는 깊은 동을 준다. 또한 풍부하고 다채로운 비유의 향연은 오감을 자극하여 황홀한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그것을 말과 글이라는  용기에 담게 되면 그릇의 크기만큼 한정돼버림을 느낀다.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순수함과 열정은 사고의 형식과  법칙에 따라 차갑게 응고되고 변질되며 왜곡되기도 한다.

언어는 감동과 재미, 유익한 것들을 전하는 도구지만 사람의 마음을 완벽히 표현해 낼 수 없는 한계도 있다. 그리고 때론 사람을 파멸시키는 무서운 도구가 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는  말이 한 인간을 어떻게 파멸시킬 수 있는지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젊고 전도 유망한 여류 화가가 있었다. 그녀의 작품 초대전에서 한 미술 평론가가 그녀에게 말한다.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깊이가 부족합니다.”

평론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화가는 그의 논평을 곧 잊어버렸다. 그런데 이틀 후 그녀에 대한 비평이 신문에 실렸다.

<젊은 화가는 뛰어난 재능이 있고, 작품도 호감을 주지만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처음 그녀는 자신에게 깊이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도 하고, 깊이를 갖기 위해 다른 화가의 전시회도 열심히 다니며 분석도 하고, 깊이를 키우기 위해 어려운 서적도 탐독하는 등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깊이에의 강요는 그녀의 내면에 거대한 오징어처럼 달라붙어 무엇이든 다른 것은 삼켜버렸다. 오로지 깊이를 요구할 뿐이었다.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절망감에 빠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깊이는 생기지 않았다. 더 이상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심신이 황폐해져 예전의 젊고 아름다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자살을 택함으로써 깊이에의 강요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짧은 단편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작품인 언어가 오히려 인간을 올가매는 도구가 될  있음을 말해준다. 언어의 노예가 되어 파멸해 가는 인물의 모습을 보며, 왜 그토록 타인의 말에 집착하며 살까?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매체에서 전하는 수많은 진실 왜곡의 형태가 언어이며,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작품은 말 한 마디가 타인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 말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가 돼 사람을 해칠 수 있는지, 진부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을 담담히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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