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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13. 2018

이범선의 <오발탄 >

 

'오발탄'은 1959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이범선의 단편소설로, 제목이 상징하듯 목표를 빗나간 탄알처럼 삶의 지표를 잃고 방황하다 파멸하는 한 가족의 비극적 삶을 그리고 있다. 전후문학의 특징이 그러하듯 이 작품 또한 인간 스스로 부른 재앙 후 참담한 실존에 놓인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통해 전쟁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다.


 주인공 송철호는 박봉의 계리사 사무실 서기로 근근이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다. 점심도 못 먹어 허기가 졌지만 집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대야에 물을 받고 손을 씻다가 물에 비친 사나이의 모습을 본다. 그 사나이는 원시인이다. 원시인은 사냥을 해서 가족이 기다리는 동굴로 가야 하지만 용기도 없고 힘도 없어서 아무 것도 잡을 수 없다. 결국 무언가를 들었는데, 그것은 누군가 버린 짐승의 내장 같은 것이다. 주인공의 내면적 고뇌와 삶의 무게가 비유적으로 드러난 이 장면은 당시 가장들이 직면한 현실 인식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빈곤하고 암울한 현실로 인해 절대 빈곤과 고독에 빠진 수많은 가장이 느끼는 비애와 자괴감은 발버둥 칠수록 죄어오는 덫처럼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가난과 불행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라는 난민들의 거처 해방촌, 철호는 그곳에 위치한 허름한 판잣집에서 치매에 걸린 노모와 상이군인인 동생 영호, 양공주인 여동생 명숙, 그리고 만삭의 아내와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은 전쟁이 잉태한 기형적 산물의 은유인 셈이다.


 그의 가족은 전쟁 중 월남한 실향민이다. 그 후 삼팔선으로 분단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자 노모는 충격을 받고 정신이상자가 되어 7년 동안 밤낮 ‘가자! 가자!’만 외치고 있다. 동생 영호는 부조리한 시대를 살면서 형처럼 성실하고 양심껏 사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영호는 제대 후 직업도 없이  방탕하게 살아간다. 노력해 봤자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갖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서는 부정한 방법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한탕주의식 사고는 결국 권총강도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작품 속에는 중요한 문제의식이 들어있는데, 특히 형제의 서로 다른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논쟁 부분이다. 철호는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지만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반면 영호는 부당한 현실에 양심을 지키는 것은 바보나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양심이란 손끝 가시’라며 빼버리면 되는데, 공연히 둬서 건드릴 때마다 아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도덕, 윤리, 관습, 법률마저 무시하고 조롱하며 용기 있게 다 벗어 버리자고 형을 설득한다. 형제의 상반되는 가치관을 통해 작가는 심오한 철학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극한 상황에서 과연 양심과 도덕, 법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간의 기본권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가?  생존과 양심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각자가 고민해야 할 몫이다.


 현실은 이렇다. 여동생은 양공주가 되어 철호를 수치스럽게 만들지만, 앓는 치통처럼 외면할 수 없는 아픔이다. 영호가 사준 빨간 신발을 보고 마냥 좋아하는 가엾은 어린 딸도 그에겐 심장을 찌르는 가시이다.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한 아름답던 아내는 지금 만삭이 된 초라한 모습으로 빈곤한 삶을 견디고 있다. 노모는 구석진 방에 누워 ‘가자!’ 만 되풀이 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그가 좌우명으로 삼아 온 성실과 근면, 양심이라는 것은 결국 가시와 치통처럼 그에게 고통만 주는 것이다.


철호는 동생이 강도로 수감되고, 아내가 출산 중 죽게 되자, 결국 오발탄처럼 삶의 방향을 상실하게 된다. 그는 극한 상황에서 치과를 간다. 그리고 그동안 그를 괴롭힌 충치를 두 개나 뺀다. 이를 만류하는 의사를 무시하고 앓던 이를 다 빼 버린다. 그의 행동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그가 지켜오던 신념과 가치, 자존심을 버리고 비참한 현실에 굴복한다는 의미일까?  마지막 장면은 그의 앞날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그가 택시를 타고 가며 경찰서, 아니 병원, 아니 여기저기, 횡설수설 하다 끝내  갈 곳을 몰라 하자, 택시 기사와 조수가 말한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탔다'

그는 생각한다

‘아들 구실, 오빠 구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 없다.’  그의 입에서 흐른 피는 옷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소설의 핵심 주제가 드러난 결말이다.


 마음이 착잡했다. 이런 비극적 상황이 소설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분단의 상흔이 현재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끝나지 않은 전쟁의 공포와 불안이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 작품이 주는 경종의 울림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전쟁은 한 나라는 물론, 세계를 파멸시키고, 결국 인간을 말살시키는 가장 잔혹한 폭력이다. 이 소설을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는 이같은 소설이 쓰여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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