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지개 경 Apr 06. 2018

내겐 너무도 특별했던 책 신경숙의 '외딴 방'

(외딴 방)은 표절 문제로 지금은 칩거 중인 작가 신경숙이 쓴 장편소설이다. 오래전 도서관 책장에 꽂혀 있던 그녀의 책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제목이 주는 쓸쓸함 때문이았다.  


단숨에 읽은 책은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 여운이 얼마나 오래 갔는지 한동안 내가 소설 속 '나'가 된 것처럼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첫 장에서 작가는 말한다.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 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 이 구절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나 또한 깊은 내면에 존재한 고독, 회의와 갈등으로 몰고 가는 내 슬픔의 정체가 무엇인지,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지 진정 알고 싶었다. 소설 속 '나'가 내 가슴 깊이 들어 온 것 같았다. 그녀는 글쓰기만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깊은 우물 속에 빠뜨린 쇠스랑, 화자의 아픈 상처가 내게 전염되던 그 시간의 흔적들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동질감, 그리고 우연히도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처음 설립된 야간 산업체특별학급에 작가가 다녔다는 사실에 있다.


대학입시 준비에 몸살을 앓고 있던 주간 학생들 중 나. 낮에는 가리봉동 공장에서 전자부품을 생산하고 밤에는 고단한 몸을 이끌고 공부를 해야 했던 소설 속 '나'. 시간은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공부를 했었다. 책 속에 묘사된 학교의 모습, 운동장과 정원의 꽃들, 소녀 동상, 교복, 교가, 그 친밀함과 반가움, 특별함 때문인가? 화자의 지난한 삶의 궤적은 나의 마음에 진한 감동을 주었다.


‘외딴방’은 화자의 열여섯에서 스무 살까지의 시절을 엿보게 한다. 그 아프고 잔인했던 시절,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문학의 꿈을 키워가던 소녀 신경숙을 만나게 된다. 화자가 잊고 싶었던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시절, 그 장소로 돌아가 그 쓰라린 현장을 다시금 복원해 낸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 속의 ‘나’는 장편소설을 출간하고 영등포여고의 산업체특별학급에서 함께 수업을 받았던 하계숙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들과 공부하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왜 쓰지 않느냐고 묻는다. ''는 원인 모를 가슴의 통증을 느낀다. 며칠 뒤 ''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안고 제주도로 떠나 16년 전의 자신을 떠올린다.

열여섯의 '나', 쇠스랑에 찍힌 발바닥을 바라보며 무언가 순결한 한 가지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외사촌과 ''는 큰 오빠가 사는 서울로 올라온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던 외사촌과 작가가 되고 싶던 ''. 나란히 공장에 들어간다. 공장에는 노조가 결성되고 ''와 외사촌도 노조에 가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하지만 회사에서 보내주는 학교에 입학원서를 쓰면서 노조를 탈퇴한다.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나' 


외딴방, 서른일곱 개나 되는 방들은 언제나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그처럼 많은 방을 가진 집이지만 한없이 외지고 외로운 곳, 삶의 중심에서 소외된 무리들이 살아가는 그 곳에 큰 오빠와 작은 오빠, 외사촌과 ''가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곳에 죽어도 있지 못할 희재 언니가 있다.


고향에서 부유하지는 않지만 큰 어려움 모르고 자라온 '나'에게 서울은 하나의 거대한 짐승과 같은 공간이었다. 비좁은 방, 경제적 궁핍, 강도 높은 노동, 큰 오빠와 셋째 오빠의 갈등, 그 밖의 온갖 고단한 삶이 '나'를 힘겹게 했다. 하지만 그 시절 '나'가 겪은 체험 중 가장 충격적이고 비통했던 사건은 동료이자 선배인 희재 언니의 죽음이었다.


희재 언니는 같은 양장점에서 일하던 남자와 동거를 하게 되고 적금을 타면 그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희재 언니가 자꾸 운다. 어느 날 아침에 마주친 희재 언니는 방문 잠그는 것을 잊고 나왔다며, 시골에 며칠 가 있을 테니 방문을 잠가줄 것을 '나'에게 부탁한다. 며칠 뒤 희재 언니의 남자가 찾아와 그녀에겐 시골이 없다며 문을 부수고 방으로 들어간다. 거기에 자살한 희재 언니의 시신이 있다. '나'는 방을 뛰쳐나와 다시는 그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소설 속 '나'가 살았던, 그리고 내가 살았던, 그 시대의 풍속도는 많은 비극을 내포하고 있다. 산업역군의 전형으로 비극적 삶을 마쳐야 했던 외딴방 속의 희재언니, 그녀는 작가에게 가장 큰 상처가 되는 인물인 동시에 그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는 인물이다.


‘외딴방’에서 작가의 고백성사는 자신의 체험을 질료로 한 글쓰기의 본능적 두려움과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의지 사이에 끝없는 갈등과 위태로운 감정의 줄타기를 보여준다. 그 시절의 불행과 죄의식으로부터 달아나려하지만,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두려움을 넘어야 하는 패러독스의 가혹성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 속 문장은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순조롭게 이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식을 파고드는 주저와 망설임, 곤혹감에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고, 같은 자리를 맴돌다  한 걸음 내 딛는 힘겨운 행보를 거듭한다.


이 책에 유난히 많은 말줄임표, 쉼표, 말없음표는 그녀가 말로 채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그럼에도 어떻게든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소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론 이런 문장부호들이 글로 표현되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책은 글을 쓰는 작가가 작품의 전면에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다. 실제 사건이 벌어진 과거와 작품을 쓰고 있는 현재의 시점이 주기적으로 교차된다. 이는 작가가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써 나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야기에 개입해 그 의미를 반추하고 그것의 필연성과 정당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런 현재 진행형 글쓰기 방식으로 그녀는 과거의 기억이 평면적 고백이나 미화된 추억담으로 끝나지 않게 스스로 질문하고 또 의미를 생성해가는 자기반성의 시간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외면하고 싶었던 과거를 현재를 통해 성찰하고, 잊고자 했던 기억을 우물 속 쇠스랑이 아닌 값진 보물로 되살려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한 영혼의 초상을 보게 된다.


떠나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글쓰기의 모험은 자신을 돌아보는 심연으로의 여행이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냉각된 문체로 옮겨 적는 작업이기도 하다.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에는 나와 관계 맺은 타인이, 사회가 그리고 역사가 들어있다.

  

작가와 나, 동질감을 느꼈던 그 시대의 거대한 풍속도는 유신독재의 시대였다. 권력의 비호 아래 일사천리로 진행된 천민자본주의의 추악한 그늘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부당한 차별과 열악한 노동조건, 낮은 임금으로 허덕였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투쟁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으나, 철저히 통제된 언론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았다.


잠시 봄이 오나 싶더니 폭압적인 군사정권의 새로운 독재가 시작되었다. 야만적인 정권은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비극 속에 몰아넣고,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인권유린과 탄압을 했다. 진실이 실종되고 거짓과 풍문이 난무했던  참혹한 과거 속으로 책은 나를 이끌었다. 그 때 나는 어디에 있었지?  나의 고민과 갈등은 무엇이었나. 역사의식은 있었나?  시대의 방관자는 아니었나?  과거를 비추는 거울 속 내 존재와 대면하는 순간 부끄러워진다. 그 때  화자처럼 나를 지켜주는 순결한 것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면 내  꿈을 향해 정진할 수 있었을까?  작가의 책 속에서 나는 기억의 퇴적층 속에 묻혀있던 나의 과거의 기억들을 되짚어 보고 있었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돌아보기였다. 두려워 꽁꽁 싸놓은 이야기를, 상실과 아픔으로 죽고 싶었던 그 시간을 되새김질 하는 것, 그래서 강을 역류해 모진 고난을 감수하고 결국 돌아가 죽고 마는 연어처럼 살이 찢기고 파이는 아픔이라 해도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 가혹한 본질에 대한 통찰임을 인식한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한 자기반성과 성찰만이 진정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의 슬픔이 젖어들던, 한강의 {소년이 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