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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y 01. 2018

루쉰의 (아 Q 정전)

아 Q 정전》을 읽으면서 작가가 왜 아큐라는 인물을 창조했는지 이해가 됐다. 민족적 자부심이 강한 작가로서는  당시 중국인들이 과거 중화주의에 젖어 속 빈 강정처럼 허세만 가득한 사고와 강자에게 아첨하는 비굴한 삶의 태도가 견딜 수 없는 수치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큐라는 인물형상을 통해 현실인식 결여와 안일함이 어떤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경각심을 일깨워 그들의 각성을 촉구하고자 했다.


아큐가 살았던 시대는 중국 청나라 말기로 열강과의 전쟁 《아편전쟁》에서 두 번이나 패해 나라는 극단적 혼란에 처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아편에 중독돼 정신적,육체적으로 파멸해 가고 있었다. 또한 부정부패가 만연된 청 왕조에 저항하는 반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 중 청왕조를 타도하고 공화정을 이루려했던 신해혁명이 있었다. 하지만 혁명은 실패로 돌아가고 근대화와 민주주의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중국 현대문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루쉰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연이은 가족의 불행으로 집안은 몰락했고, 그 뒤 고향에서 갖은 냉대를 받으면서 사회비판적 사상이 싹튼다.

일본 의과대학에서 유학하던 시절  일전쟁과 관련된 영상을 보던 중  러시아 스파이란 죄명으로 중국인들 앞에서 멍하게 죽음을 맞는 어떤 중국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아래와 같은 자각에 이르게 된다.

무릇 어리석은 국민은 체격이 제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하다 하더라도 전혀 의미 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구경꾼밖에는 될 수 없다

그 후 루쉰은 학교를 그만두고 귀국하여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한 문예활동’에 전념한다.


 서문에 작가는 「아 Q 정전」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를 좀 장황하게 밝히고 있다. 작가는 아Q가 후세에 전할 만한 인물은 못 되지만 그의 이야기는 나름의 가치가 있어 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인물의 호칭이 특이하다. 알고보니 아(阿)는 중국인들이 성이나 이름 앞에 붙여 친근감을 나타내는 글자에 불과하고 Q는 변발을 의미했다.


작가가 아큐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것은  아큐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대한 불신 때문일 것이다. 아큐의 막연한 정체처럼 당시 중국도 가야할 길을 잃고 헤매며 온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또 만주족에게 나라를 빼앗긴 한족의 정체성도 문제 삼고 있는 듯했다. 청왕조의 뿌리는 만주족으로 한족이 옛부터 오랑캐라 무시했던 민족이다. 그런 청나라를 타도하기 위해 신해혁명을 일으켰지만 실패하고, 깊은 패배감을 맛봤을 것이다. 게다가 전쟁에 진 후 영국과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을 맺은 것도 주체성 없는 행동으로 비췄을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비극적 현실을 지조없고, 부화뇌동하며 강한자에게 아첨하고 약한자는 무시하는  노예근성의 아큐란 인물에 빗대어 형상화한 것이라 생각한다.

아큐는 미장이란 작은 마을에서 하루하루 날품을 팔아 살아가는 최하층민이다. 아큐는 머리에 부스럼 자국이 심해 그곳이 대머리처럼 돼 버린 일종의 신체적 결함을 갖고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신의 치부를 놀리는 사람에겐 노발대발하지만 오히려 상대에게 당하고 만다. 하지만 온갖 수모를 당해도 그에겐 ‘정신승리법’이란 자기 합리화 방법이 있기 때문에 곧 아무렇지도 않게 되고 심지어 더 당당해진다.


어느 날 아큐는 짜오 영감 댁 하녀를 희롱하다 마을에서 쫓겨난다. 그 뒤 성내에 들어갔다가 귀한 물건을 갖고 나오자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환심을 사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도둑 패거리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다시 멸시를 당한다.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혁명당원이 되어 사람들을 혼내주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이미 다른 사람들이 혁명을 주도해버리고  그는 짜오 영감의 집을 턴 도둑으로 몰리게 된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되어 권력 집단의 희생양이 돼 총살당한다.


사실적이고 풍자적인 소설 당시 중화주의에 함몰돼 과거 영광에 집착하고, 자만에 빠져  침략 저항하지 않, 실도 직시 못한 채  무기력하고 비굴한 태도로 일관하는 중국인들의 나약한 정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소설 속 인물 큐는 중국의 역사적 상황이 낳은 인물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될 뿐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을 자기 기만의 존재방식은 현재도 유효하다. 따지고 보면 아큐의 정신승리법은 독특한 것이 아니다. 인간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자기방어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스럽고 힘든 문제에 직면했을 때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곧 그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비겁한 자신을 이런저런 이유로  합리화하며 마음에 안정을 누리려한다.


그래서인지 아큐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한심하고 답답하지만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Q 정전)이 중국의 역사적 비극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오늘 날도 여전히 생생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아큐가 보편적 인간존재의 한계로 상징되며, 그것은 끊임없이 우리가 경계하고 극복해야할 당위성을 부여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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