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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y 23. 2018

가고 오는 것들의 의미

오월을 시샘하는 비가 종일토록 내린다. 비의 무게가 버거운 나무와 꽃들은 잎을 축 늘어뜨리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 둠은 고요히 다가와 거리의 풍경을  지우고, 창백한 가로등은 사위어가는 것들안타까이 바라본다.

쓸쓸함에도 비오는 오월 저녁은 매혹적이다. 헤어짐과  만남처럼  슬픔과 환희의 감정을 모두 함축하고 있기에 감동적이다. 온갖 꽃이 만발한 계절의 여왕 오월이 이제  푸른 잎이 무성한 여름에 자리를 내주고 조용히 물러나려 한다. 아파트 숲 가운데 서서 사무치도록 아름답고 쓸쓸한 풍경을 마음 깊이 새긴다. 며칠 후면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질 오월과의 이별은 마치 아이에서 청년으로 훌쩍 커버린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낼 채비를 하는 부모의 심정 같다.

오월이 가면 새로운 유월이 올 것이다. 쉼 없이 흐르는 시간의 바톤을 이어받기 위해 수많은 달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가고 오는 날들이 습관처럼 권태롭고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먼저 떠나신 분들을 생각하며 끝없이 나를 질책한다. 사랑했던 분들을 생각하며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여름은 젊음이 빛나는 계절이다.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한다면 여름은 당연히 청년의 시간이다. 새삼 돌아보면  젊음이란 생이 준 가장 큰 축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젊음이 좋은 것은 무엇이든 도전해 볼 수 있다는 것,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겨도 감당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는 것이다. 실패해도 만회할 수 있는 힘과 시간이라는 소중한 재산이 있기에 용기를 낼 수 있다. 용기는 나이와 상관 없다지만, 세상만사 용기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아버린 지금은  무엇을 새롭게 시도하려면 지나친 신중함과 주저함이 발목을 잡는다.

여름도 금세 지나가듯  젊음도 쉬이 가는 걸 그땐 몰랐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건 왜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지. 뒤를 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온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탓하고 회한에 젖기엔 세상은 너무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들이 많다. 가고 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떠날 때를 알고 가는 뒷모습은 아름답다는 어느 시의 구절처럼 이별을 슬퍼하지 않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새로운 그 무엇으로 되돌아 오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올 여름 아무리 푹푹 찌는 더위가 온다 해도 열정만큼 뜨거울 수는 없다. 작년은 열정으로 무장한 이열치열의 근사한 여름을 보냈다. 더위를 벗 삼아 산을 오르면 체내의 불순물이 땀으로 배출되고, 그래서 가벼워진 몸에 바람이라도 닿으면 그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 내면 깊숙이 스며드는 성취감과 뿌듯함이 시원한 바람이 돼 마음을 적신다.

깊어가는 여름에 새소리 매미소리를 들으며, 고즈넉한 정자에서  읽는 즐거움도 맛 볼 것이다.  마치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마법 같은 시간, 자연과 책과 상상력이 조우하는 짜릿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돈도 들지 않는 피서이다. 우리 아파트 뒷산 정자로 소박한 소풍을 갈 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날과 시간만 알아두면 나만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올 여름은 얼마나 뜨겁고 무덥고 습할지, 숨이 헉헉 막힐지 모르겠다.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며 시간을 보낼 때 여름은 진정한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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