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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n 04. 2018

옛것의 가치

6월의 첫 주말을 이것저것 정리하면서 보냈다. 그러다 책꽂이 한 쪽을 차지하고 있던 앨범에 눈길이 갔다. 격세지감을 느꼈다. 지금은 스마트 폰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카메라는 가정의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이나, 놀러갈 때, 가족 행사가 있을 때, 훗날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셔터를 눌렀던 시절이 있었다.  카메라가 있었기에 사정없이 지나가는 시간도 의기양양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에 그 시절 선호하던 카메라는 올림푸스, 니콘, 캐논과 같은 일본산이었다. 우리 집도 몇 번 바꾸고 마지막으로 산 것이 니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골동품이 돼 오래된 물건을 보관하고 있는 박스 안 어느 구석에 초라하게 박혀 있을 그것을 생각하니 한 때 그 속에 담겼을 추억마저 퇴색된 것 같아 마음이 몹시 허탈했다.

     

앨범이 제법 많았다. 년도 순을 보지 않아도 앨범자체에서 풍기는 낡은  표지와 퀴퀴한 냄새가 시간의 자취를 말해주고 있다. 가장 오래된 앨범은 어릴 적 나와 친정 가족들의 것다. 지금의 가정을 이루기 전 나에게 주어진 정, 그 흔적이 앨범 한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흑백사진도 있다. 친정 어머니와 조부모님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고 수줍게 웃고 있는, 어머니도 나를 만나기 전 이처럼 순수하고 예쁜 소녀였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진 속 시간은 멈춰있다. 사람들도 풍경도 계절도 나이도, 모든 것이 멈춰있다. 생동감 넘치는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카메라가 토해낸 사진 속 세상은 생명이 사라지고 형체만 오롯이 남은 고요하고 정지된 세상이다. 마치 羽化한 벌레가 남겨놓은 껍데기처럼 허망하고 쓸쓸한 세상. 그럼에도 희미해진 기억을 되찾기 위해 한참 동안 사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박제된 시간 속 풍경은 꿈처럼 아득해서 기억의 조각만이 이리저리 떠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그리움만 더욱 깊어진다.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을 보면 저렇게 열심히 찍은 사진을 얼마나 자주 볼까?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마음을 기억이나 할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처음 카메라로 사물을 찍을 때 사람들은 카메라가 영혼을 앗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속 장면들은 정물화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카메라로 뽑아낸 세상은 마치 힘차게 날갯짓하던 새를 새장에 가둬버린,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인 세상을 단숨에 평면적 액자로 판박이 한 바로 그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냥 본 대로 느낀 대로 몸이 기억하도록 놔두고 싶었다. 사진보다 마음속에 깊이 새겨놓고 싶었다. 기억의 한계로 잊히게 되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도록.

     

그러나 요즘은 스마트 폰으로 풍경사진을 많이 찍는다. 비록 순간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담을 순 없지만 찍은 사진을 보고 감회에 젖기도 한다. 추억과 그리움이 함께 밀려오면 가끔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다. 앨범을 뒤적이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과 반대로 그 모습 그대로 덩그러니 놓여진 사진 속 세상이 마치 속세의 것이 아닌 듯 느껴지기도 한다.

새삼 모든 게 디지털화 돼 가는 세상에 아날로그 카메라와 이 점점 쓸모 없어지는 옛것을 보며 소중했던 것들을 다시 반추하게 된다. 사라져 가기에 더 치 있고 한 역설의 의미를 되씹어보게 된다. 기억에서 멀어져 가는 예전 나의 정체에  대해,   번  다시 몸 담을 수  없는 간적 부재에 대해  결핍이 느껴질 때면  애잔한 슬픔이 엄습한다. 래서 지나 온 삶의 궤적을 증거할 수 있는 사진이나  손 때 묻은 물건에 더욱 애착이 가나보다. 특히 카메라나  레코드 전축 같은  것들은 사진과 달리 실체를 직접 만질 수 있어 추억이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나의 체취가 배어 있다고 생각하니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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