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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n 17. 2018

일상에 갇힌 느낌이 들 때

아침에 눈을 뜨면서  먼저 생각나는 것이 오늘 스케줄이다. 하지만 별다른 일은 없다. 매번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로 가서 아이들과 수업하고 학부모 피드백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틀에 박힌 일과이다. 분명 어제와 다른 오늘이건만 정해진 하루의 일정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보내기 위해, 권태로 포진한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주변을 낯설게 바라보려 노력하지만, 강한 외부자극이 주어지지 않는 한 관성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나날들이다.

     

새벽에 운동을 가면서 자연은 한 순간도 같은 장면을 보여주지 않으리란 믿음으로 하늘을 보았다. 여름이라 그런지 푸르스름한 여명이 걷히며 성급한 햇살이 벌써 사방으로 전진해온다. 헬스장에선 같은 시간에 오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눈인사를 하고 매일 하던 기구운동을 한다. 기구운동이 끝나면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한다. 뭉쳤던 근육을 풀어준 다음 런닝머신을 다. 한 바탕 땀을 흘리고 나면 정신이 좀 맑아지는 듯하다.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살펴본다. 언뜻 보기엔 주변도 늘 같은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집 허물기이다. 옛날 집을 사정없이 무너뜨리고 새집을 뚝딱 만드는 장면, 엊그제 허문 것 같았던 집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가는  외에 특별한 풍경은 없다.

     

매일 특별한 날을 기대하지만 그냥 무심히 흘러가는 날들이 더 많다. 일상이 무덤덤한 건 내가 무덤덤하기 때문이란 걸 안다. 좀 더 세심하게 주변을 관찰한다면 볼 거리 생각할 거리가 많을까?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만 보기 시간은 늘 부족하다.

     

글을 쓰다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를 때가 종종 있다. 그냥 생각이 닿는 대로 타자기를 두드리며 무의식이 시키는 대로 글을 썼다가 비평의 잣대를 들이대며 다시 지우기를 반복한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타성에 젖어 살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이게 아닌데' 자각하게 된다. 하지만 글과 달리 지나간 삶은 다시 지울 수 없기에 후회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일상에 갇힌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 감정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리란 두려움, 삶에 대한 회의와 일에 대한 염증, 에너지가 소진돼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기력증이 심신을 파고들  일상을 벗어나  쉬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것 아니면 저것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할 뿐 느긋이 나를 기다려주거나,  시간적 여유를 줄 만큼 관대하진 않았다. 여행을 하거나 쉬면서 다시 살아갈 힘을 충전하 것이 무척 필요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물론 나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소신을 갖고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면 분명 길은 있었을 것이다.

     

소심한 나는 주변의 걸린 문제들을 제쳐두고 나만을 위해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나에겐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나름의 저력이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권태와 허무로 의기소침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질 때마다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현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도전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결정되면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목표를 향해 달렸다.

     

몇 년 전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일급에 도전했다. 아이들 한국사를 지도하고 있어서  내가 먼저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나 역시 역사를 좋아했기에 스스로 실력을 평가받고 싶었다. 여름휴가를 도서관에서 거의 보냈다.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시험 결과가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역사 공부를 하면서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가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오랜만에 앎에 대한 기쁨을 만끽하면서 일주일이란 시간을 열정적으로 보냈다. 노력한 만큼 결과도 좋았다.

  

요즘 살짝 일상에 갇힌 듯한 느낌이 자주 든다.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할 시점이 된 것 같다. 물론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일상의 권태를 메꿔주는 활력소가 되고 있지만, 좀 더 나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과 좀 달라졌다면 현실을 핑계로 진짜 하고 싶은 것을 놓치지 말자는 생각이다. 「연금술사」에 나오는 크리스털 가게 주인은 성지 순례를 가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결국 가지 못했다. 아니 그는 두려워서 가지 않았던 것이다. 메카에 가는 꿈이 자신의 삶을 지탱시켜준 힘이었는데, 그것을 이루게 되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리라는 모순에 갇힌 것이다. 연금술사에 나오는 인물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올 겨울에 지인들과 스페인에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여행을 계기로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는 꿈을 꾸고 있다. 꿈을 꾸는데 그치지 않고 꿈이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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