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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Mar 30. 2022

고난의 주간

목요일 저녁 남편이 몸살 기운이 있다고 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떨치던 때라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남편의 몸살은 종종 있는 일이어서 이번에도 한잠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금요일 새벽. 아이가 뒤척여서 깨었는데 남편이 옆에 없다. 남편은 웬일인지 다른 방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내 인기척에 일어난 남편은 옆방에서 나오더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아침이 밝았고 남편은 아침을 간단히 먹고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를 해보겠다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10분 20분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나온 남편은 마스크를 끼고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순간, 우리집에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 외엔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신속항원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아침 일찍 아이를 안고 채비를 했다. 병원을 가는 차 안에서 음성이면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일 테니 차라리 아이도 나도 양성이면 좋겠다 하는 얄궂은 생각을 했다. 일주일 간 우리 셋 운명공동체로 묶여 진한 전우애도 쌓고 말이다.      


병원에 도착했다. 첫 진료라 진료카드를 작성하는데 남편이 아이의 생일을 헷갈려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전화번호도 엉터리로 작성해 놓은 것이 아닌가. 차분해 보이더니 적지 않게 당황한 모양이다. 나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바짝 긴장을 하고 검사 결과를 받았는데 남편만 양성이었다.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던 병원이 소아과라서 그런지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이 아이와 나를 번갈아 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격리에 꼭 성공하길 바란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2~3일 정도의 잠복기가 있으므로 앞날이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이제 꼼짝없이 한집에서 격리 생활을 해야 했다. 다행한 일은 화장실 하나에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방이 두 개 밖에 없던 주택에서 화장실 2개가 갖춰진 아파트로 이사온지 며칠 만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슬픈 현실이지만 아빠의 백혈병 확진이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기에 이 정도쯤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 위에는 남편의 부재가 그리 큰 공백을 안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안이한 마음도 살포시 얹혀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부재와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이 가져온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남편이 아들과 함께 놀아주던 짧은 시간들이 목마른 육아 노동자에게 작은 샘물과 같은 것이었는데 그 샘물마저 끊어지자 마음에 큰 타격이 왔다. 머리 감을 시간은 물론 엄두를 내지 못했고 한 끼도 못먹었는데 해가 진다.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면 머리도 감고 국물에 밥 한 그릇 정도 말아먹을 수 있는데 지겨워서 칭얼대는 아이에게 정신을 뺏겨 먹고 씻는 것마저 귀찮아져 버린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자 아이의 생존과 관련된 것 외에는 모든 것이 귀찮다.      


이틀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급격히 에너지가 떨어지는 듯하여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후도우미로 오셨던 분이 본인이 애를 셋 낳고 너무 힘들어 매일매일을 울면서 지냈는데 생각해보면 그때 살림하는 능력이 일취월장했다며 웃으셨다. 아이를 수월하게 보면서도 국과 반찬을 뚝딱 만들어내시던 마법사 같던 그 능력을 부러워하며 어떻게 그런 능력을 얻으셨냐고 묻던 내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 계기에 마법사는 못되어도 외부 도움 없이 지속 가능한 육아생활이 가능하도록 틀을 잡아보고 싶었다. 이 고난의 주간을 통해 내 육아력을 한 단계 상승시켜도 보고 싶고, 한계를 시험해보고도 싶은 이상한 객기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육아생활이라는 것이라고 해보아야 아주 기본적인 것이지만 말이다 국에 밥을 말아먹든 아이를 따라 밥그릇을 들고 다니며 먹든 최소한 두 끼는 챙겨 먹는다. 과일도 챙겨 먹는다. 매일 머리를 감는다. 빨래도 한 바구니가 다 차도록 쌓아두지 않는다. 집안은 청소 의욕을 꺾을 만큼 지저분해지는 것은 피한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나 자신도 동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아이의 안전은 희생하지 않는다. 적어놓고 보니 또 만만치 않은 조건이기도 한 것 같다.      


외부의 도움이 끊겨버린 불가능성의 정리와도 같았던 난해한 상황들이 이상하게도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져 갔다. 껌딱지 같은 아들을 혼자 놔둘 수 없으니 최대한 아이를 으르고 을러 모든 일정을 함께 했다. 아이 목욕 직전에 내 머리를 감았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빼고 널고 개는 것까지 살뜰하게 아들과 함께 했다. 그랬더니 격리 후반부 정도가 되어가니 아들이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있다. 물론 멀쩡한 옷들도 죄다 넣어서 결국 도움은 되지 않지만 말이다. 독박 육아가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슬픈 진리에 도달하는 순간이었달까.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떡 뻥을 하나 쥐어주고 화장실로 뛰쳐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오려는데 변기에 채 안기도 전에 떡 뻥을 게눈 감추듯 하고 화장실로 걸어 들어오는 아들. 유아용 스위트콘을 식판에 널어놓고 다 주워 먹을 때까지 점심을 챙겨 먹으려 하는데 스위트콘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 그러고는 나와 함께 놀 때 잠깐잠깐 스위트콘을 살뜰히 챙겨 먹는 숭악한 아들.     


결국 독박으로 육아생활을 지속할 수는 있지만 아직 나의 복지를 충분히 챙기면서 아들 뒤치다꺼리를 말끔히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일주일간의 격리 생활은 소화불량과 왼쪽 팔꿈치 통증이라는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어찌어찌 일주일이 흘러 아들과 나는 무탈하게 살아남았고, 생존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미묘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 남겨져도 내 보잘것없는 몸뚱이로도 나와 아들의 생존은 확보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저 육아력 상승에 기여한 고난의 주간을 감사히 받아들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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