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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Jul 07. 2022

내향인의 공동체살이

나는 전형적인 내향인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외부활동을 하면서 소진한 에너지는 집에서 조용히 채워 넣어야 다음날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하여 마음의 힘이 고갈되면 마음에 가시가 돋치면서 좀처럼 예민해지지 않는 내 마음에 날이 선다. 육아 초반에 마음이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혼자만의 시간을 모조리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지난 3월부터 공동체 생활인 듯 아닌 듯 느슨한 공동체에 들어왔다. 협동조합 형식으로 꾸려진 임대아파트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리기 시작한 것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조합원들 간에 혹은 조합원에서 선출된 이사진들 간 협의를 통해 결정된다. 입주 전,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지난 두 달은 의외로 즐거웠다. 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에 소소한 소모임이 꾸려지기 시작했고 나는 아이를 끄나풀로 느슨한 육아모임에 참여 중이다. 육아모임이라고 해봐야 채팅방에 참여하며 촉감놀이같은 작은 놀이들을 함께 준비하는 정도이다. 그중에서 접촉면이 조금 더 많은 몇몇 엄마들과는 조금 더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그럭저럭 소극적인 공동체 생활에 안착하고 있을 때, 예상치 않은 곳에서 내향인의 공동체살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생겼다. 협동조합 사무국에서 기획한 플리마켓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아파트 자체가 협동조합 형태로 꾸려진 곳이다 보니 플리마켓에 협동조합 형식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사업자들이 참여하기로 하였는데 사업자들이 판매하는 품목과 아파트 상가 내에 있는 과일가게의 품목들이 겹치게 된 것이다. 플리마켓 사업자 선정 과정이 급하게 이루어진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과일가게 사장님도 아파트 입주민이자 조합원이었고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그 방식이 상당히 거칠었다. 플리마켓을 기획하였던 아파트 이사진과 운영팀들에 대한 인신공격이 이어졌다. 그동안 훈훈한 소식과 칭찬들이 가득했던 아파트 온라인 카페는 과일가게 사장님의 의사 개진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과 지지하는 글, 재반박 글로 격앙되었고 몇 주 지나 잠잠해진 지금, 많은 조합원들에게 마음의 앙금을 남기고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모여 사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아 아파트에 들어왔던 나로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나의 공동체살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산다는 의미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생각들이 모인다는 것이고, 그 생각을 표출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라는 의미다. 갑자기 내향인인 나에게 이런 환경이 상당한 삶의 위협으로 다가왔다. 내가 나를 오롯이 돌보아야 하는 가장 내밀한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의 에너지가 우글거리는 이 상황을 나는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낼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들과 생산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데 보탬이 되고 싶은 이 모순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보탬이 되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소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을 때 생기는 마음의 부담감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러다 며칠 전 주말, 아파트 지인들 다섯 명이 모여 공유 주방에서 빵을 구웠다. 특별한 목적은 없었고 그저 함께하면 즐거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빵을 굽고 나니 저녁 시간이 되어 한집에 다섯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서로 조금씩 싸온 반찬을 나누며 돌아가며 저녁을 순식간에 끝냈다. 다섯 명의 아이들은 아무 삼촌 이모 무릎에 앉아 놀았고, 어른들은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별 없이 밥을 먹이고 안아주었다. 그렇게 번개 모임을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공동체 생활이란 게 어쩌면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내 가족 아닌 남의 가족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느슨한 공동체에 속할 수 있겠다는 마음 가벼운 깨달음이 찾아온 것이다.     


좋은 공동체,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 이 아파트를 선택했던 다소 비장한 마음은 잠시 놓아두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해보고 싶다. 어쩌면 내 가족이 존중받는 공동체에 산다는 것은 내향인인 내 성향과 의외로 잘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냉담한 이웃들을 경계하며 쓸 에너지를 따뜻하게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니 말이다. 육아에 숨 쉴 틈이 생기면 아들을 위한 인연들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함께 가질 수 있는 인연들도 찾아보고 싶다. 내가 공동체에 큰 보탬이 되겠다는 부담감과 조급함은 당분간 가지지 않기로 한다. 어쩌면 건강한 공동체는 추진력과 배려심을 갖춘 소수와 마음으로 응원하는 조용한 다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나는 일단 조용한 다수가 되어보기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 공간에서 행복할 것. 남편과 아들 그리고 내 오랜 인연들과 행복한 시간을 많이 보낼 것. 그렇게 얻어진 좋은 에너지야말로 공동체를 위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인연들과 공동체를 위협하는 갈등이 생긴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가족과 상의하여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정면 돌파할 것. 공동체살이에 성공하고 싶은 내향인의 다소 두서없고 장황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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