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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Jul 19. 2022

주말을 현명하게 보내는 방법

나는 주말이면 바짝 독이 오른다. 며칠 전 아들과 함께 개구리에 관한 그림책을 읽었는데 내 모습이 흡사 시뻘겋게 독이 오른 독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임신과 출산을 거쳐 삶의 패턴, 가치관, 시간관념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 나와는 달리 남편에서 아빠로 서서히 변하고 있는 남편과의 간극은 아직 잘 좁혀지지 않는다. 남편과의 접촉면이 적은 주중에는 잊혔던 그 사실이 주말만 되면 생생히 살아난다. 주말이 되어 그 간극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면서 그동안 쌓였던 서운한 감정들도 한꺼번에 꿈틀거린다. 아이와 산책을 하겠다고 먼저 말해주지 않는 것, 본인 저녁밥을 예쁘게 차려 담는 것 그런 사소한 간극으로는 내가 쌓아둔 독기를 한꺼번에 발산할 수는 없어 이번 주말에도 서운한 감정들은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쌓이고 만다. 누구의 잘못이 아닌 양육자 둘 사이의 속도 차이 때문에 생겨난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생채기를 남기며 마음에 쌓이는데 목구멍까지 들어찬 날 것 그대로의 상처들이 소란스럽게 일렁인다. 주말은 그렇게 내 마음속 독 항아리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내 내면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고, 아직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아빠 되기를 주저하고 있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며 소소하게 싸워야 한다. 예전에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었던 주말이 이제는 지뢰밭을 건너는 마음처럼 늘 초조하고 이글거린다.      


그런데 주말의 우리 부부를 더욱 삭막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디를 가든 사람이 많다는 사실. 주말 가볍게 산책 가는 기분으로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고양 스타필드에 갔던 날, 유모차를 밀 공간조차 없이 인파에 휩쓸리다 집에 돌아온 경험이 있다. 그 이후로는 주말에 감히 대형 쇼핑몰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데 어제 용감한 이웃이 돌이 안된 아이와 스타필드를 갔다가 한 시간 반을 기다려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를 가겠다는 용기가 아니 오기가 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꽤 무모한 사람이었다. 길 잃는 것이 다반사여도 혼자 모르는 도시를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에 크게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인생이 시작되고부터는 아주 작은 모험도 섣불리 감행하지 않는다. 소극적인 엄마가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시행착오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 아마도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아마도 제왕절개를 권하는 선생님의 완곡한 제안을 거부하고 자연분만을 시도한 것이 당분간의 마지막 모험이 될 것 같다. 물론 그 결과는 처절한 실패였다.      


하지만 또 집에 박혀 무미건조한 주말을 보내자니 억울하다. 아직은 나에게도 일말의 무모함이 남아있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행복하기 위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지 않았던가! 그렇게 주말마다 즐거움과 내면의 평화 사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아본다. 즐거움을 쫓아 조금 무리를 하다 셋 중 한 사람이 인내할 수 있는 역치를 살짝 넘어버리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기 십상이다. 사실 요즘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마음의 역치를 넘는 일이 생길까 봐 제일 두렵다. 남편의 짜증 섞인 반응, 아이의 칭얼거림이 시작될라치면 나는 또 독개구리가 될 것이므로 그 상황만은 피하고 싶다. 주말을 현명하게 보내고 싶은 평범한 아낙의 마음이다.     


다행히 주말 외출 경험이 쌓이다 보니 주말을 지혜롭게 보내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붐비는 곳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이 많이 오는 곳이면 아침 시간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아이와 함께 외출 준비를 하다 보면 오전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리는데 집집마다 처한 상황은 비슷한 듯 어디든 아무리 일러도 11시는 되어야 아이 손을 잡은 가족들이 몰려온다. 그만큼 남들보다 이른 시간에 움직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주말이 되기 전날 밤까지 정확한 목적지를 결정해야 하고, 다음날 아이가 먹을 아침 메뉴를 생각해놓아야 한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 어른들이 준비를 마치고, 아이의 아침을 후딱 만들어 먹이면 9시가 조금 넘는다. 늦어도 9시 반에는 출발해야 어느 목적지이건 10시 언저리에 도착할 수가 있다.     


그렇게 오전 두 시간을 열심히 놀다 보면 주말 전쟁을 치를 인파들이 몰려온다. 인파들을 뚫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뿌듯하다. 그리고 어쩌면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점심을 먹고 긴 낮잠을 잔다면 엄마 아빠도 짧은 낮잠을 즐길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오후 언저리가 되어 있을 테고 동네 산책을 하면서 여유로운 저녁을 맞을 수 있다. 주말에 나의 내면을 지키는, 그리고 나의 남편의 안위를 지키는 현명한 방법.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일 듯하다. 장소 선정은 빠르고 과감하게. 주말 아침은 분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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