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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Jul 23. 2022

여행짐 꾸리기

다음 주 일주일 간의 강릉 여행이 성큼 다가왔다. 아무리 긴 여행이라도 여행 직전이 되어서야 짐을 꾸리던 과거의 나를 비웃듯 나는 무려 여행 4일 전부터 짐을 꾸리고 있다. 아니 짐 꾸리기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 둘 대충 생각해보았더니 새로 구입해야 하는 아이 물건들이 한둘이 아니다. 짐 꾸리기를 시작하려다 말고 때 아닌 인터넷 쇼핑을 시작했다.      


우선 기저귀를 점검해본다. 낮에 쓸 기저귀는 충분한데 아들의 통잠을 책임질 통잠 기저귀가 14장 밖에 남지 않았다. 넉넉잡고 하루에 두 장을 쓴다면 일주일치가 남아있는 셈인데 여행을 채 가기 전에 다 소진해 버릴 상황이다. 부랴부랴 기저귀를 주문한다. 지난달부터 통잠 기저귀는 5단계에서 6단계로 한 단계 올려 썼는데 아무 생각 없이 5단계를 주문해놓고는 아차 싶어 얼른 취소하고 다시 6단계 기저귀를 주문했다.

     

생각해보니 아이 간식도 마땅치 않다. 예전에 사놓은 떡뻥 두 봉지가 남아있지만 어쩐지 흥미가 떨어진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10개월 때부터 먹던 과자인데 거의 1년을 먹었으니 아무리 먹성이 좋은 아들이지만 배가 고플 때 못내 주워 먹는 수준이다. 낯선 곳에서는 아이의 기분이 시시각각 변하므로 아이의 기분을 달래줄 과자는 필수다. 몇 주 전 지인이 가져온 과자 한 봉지를 아들 혼자서 거의 다 먹다시피 한 일이 생각나 그 비장의 무기를 몇 봉지 주문해본다. 육아는 선택의 연속이라. 해당 과자의 공식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아이 발달단계별, 과자맛별 종류가 스무 가지가 넘는다. 비슷비슷하기만 한 과자들 사이에서 겨우 단호박, 광천김, 자색고구마 맛 과자를 두 봉지씩 주문했다. 해당 사이트에서는 처음 주문해보는지라 회원가입을 해야 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귀찮아져서 주문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내일 저녁 이 시간에 다시 회원가입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육퇴 후 기저귀와 간식을 검색하고 주문했을 뿐인데 어느새 자정이 넘어있다.     


아이가 중간중간 간식으로 먹을 우유도 주문해야 하는데 다음날로 미루기로 했다. 다행히 여행 4일 전 미리 짐을 꾸리겠다는 훌륭한 생각을 한 나를 칭찬해주면서 약간의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을 좀 더 가볍게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 상황이 조금 서글프기도 하지만 아이와의 여행을 준비하려면 순간순간 의지를 다져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도 숙소와 렌터카, 기차표 예약을 마쳤으니 벌써 몇 번의 의지를 다진 셈이고, 이제 차곡차곡 짐을 잘 꾸려 떠나는 일만 남았다.     


물론 성공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해도 정작 여행지에서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할지 정해진 계획은 없다. 강릉에서 첫 3일 동안 묵게 될 숙소도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최성수기에 떠날 수밖에 없었던 강릉행이었던 만큼 숙소 가격은 잔인했다. 그래서 용감하게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 우리 부부가 자주 가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아직은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는 소박한 해변가에 위치한 작은 게스트하우스인데 우리 부부가 애정하던 공간이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던 겨울,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당분간의 마지막 여행이 될 거라며 강릉 여행을 갔을 때도 묵었던 공간이라 여러모로 추억이 서려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간이침대에 공동 샤워장을 써야 하는지라 아이와 오순도순 무탈하게 잘 지낼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다행히 우리 사정을 듣게 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비어있는 온돌방을 내어주신다 하셨으니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게다가 낡은 시설에 걸맞지 않게 따뜻한 물이 잘 나오는 숙소이므로 튼튼한 우리 아들은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아이의 기저귀와 튜브를 넣었을 뿐인데 벌써 큰 캐리어의 반이 채워졌다. 아이의 먹거리, 입을 거리를 챙기고 나면 우리 부부의 짐은 가방 남은 자리 빈 구멍을 채우듯 여기저기 어지럽게 박혀 있을 테고, 여행 첫날은 몹시도 허둥지둥 대겠지만 그것 또한 여행의 매력이니 즐겁게 떠나보자 강릉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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