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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Sep 27. 2022

그녀들은 왜 맥락 없는 인간들이 되었나

이곳 느슨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아파트로 이사 와서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 주로 아들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다. 그 친구들 중 나와 동갑내기 친구가 하나 있는데 돌잔치 겸 가족 행사 준비로 몸도 마음도 분주한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깨달았다. 우리가 점점 가족들에게 맥락 없이 화를 내고 윽박지르고 있다는 사실.     


몇 달 전의 일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블링이 많이 들어간 한우를 아들에게 먹이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지 남편이 고기를 바꿔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그때는 나 역시도 기름기 많은 한우보다는 살코기 위주의 고기를 먹이고 싶었던지라 그러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한우를 사다가 호주산 소고기를 사자니 어떤 것을 사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래서 기름기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우 부위를 골라 먹이곤 했다. 그러다 몇 주 전, 남편이 다시 기름기가 많은 한우를 계속 먹여도 되는 걸까 하며 지나가듯 이야기를 건넸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불기둥이 솟았다. 그럼 “네가 사서 먹이든지” 신경질을 내며 꾸역꾸역 아이 저녁을 계속 먹였다. 남편은 나의 반응에 놀랐는지 무겁게 입을 닫았다.     


자는 시간 외 모든 시간을 아이에게 할애하고, 틈틈이 휴대폰을 보는 시간에도 아이 기저귀, 먹거리, 화장품 등등 끊임없이 떨어지는 소모품들을 주문해야 하는 양육자의 마음을 남편이 알 턱이 없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남편과의 공동 육아를 꿈꾸었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깊은 배신감으로 몸서리를 치다가 이제는 최소한의 아빠 노릇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최소한”의 기준에 대해서는 두 사람 사이 협의된 것도, 합의된 것도 없다. 물론 나는 육아를, 남편은 생계를 책임진다는 합의된 원칙 하에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 상하는 것은 그 중간 어딘가 회색지대에 분담되지 않은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들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한 마음은 새 생명으로 삶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바뀐 내가 아직 일이 우선인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던져진다. 이제 어언 육아 2년 차가 되어가면서 서로를 북돋아가며 건강한 육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나는 과거의 내가 되었다.   

   

차라리 남편이 상식에서 벗어나는 불한당이라면 이 미친놈아 소리를 질러대며 집을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편 또한 밀려드는 일에 치여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것을 알기에 상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다가 불쑥 치밀어 오르는 한줄기 감정에 맥락 없이 화를 낸다. 목구멍에 차올라 있는 용암같이 뜨거운 것이 언제 어디로 튀어 터질지는 나도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 내 감정의 용광로는 항상 위험수위이며, 조금만 감정이 건드려지면 쇳물이 파도처럼 일렁인다는 것이다.      


언젠가 설거지를 하던 남편이 “나 착하지?”라는 말을 하여 벼락같이 화를 내고 가출을 했다는 아내 이야기를 담은 웹툰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매일매일 하는 일인데 네가 착하면 칭찬 스티커만 모아도 포도밭이 사만 평이겠다”라는 말로 핀잔과 함께 집을 나와버렸으나 정작 갈 곳이 없더라는 슬픈 이야기. 아이가 없었던 때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그 맥락 없는 마음속에 자리 잡은 깊은 맥락이 보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참았을까. 수많은 감정들을 눌러 담아 위태로운 마음에도 아이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부모의 모습이, 보통의 인간이 보인다.     


이 감정의 용광로는 언제까지 마음에 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나의 큰 바람이 있다면 감정의 수위를 낮추지는 못할지라도 순간의 감정들에게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너무 뜨거워 거대한 감정의 덩어리로 녹아들기 전에 이 감정이 불공평한 업무 분담에 대한 불만인지, 섭섭함인지, 육체적 피로 누적으로 인한 힘듦인지. 감정의 정확한 이름이라도 알면 내가 왜 화가 나는지 나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조금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 둘 사이 합의되지 않은 회색지대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기를. 용암 튀듯 무작위가 되어가는 마음 말고, 조금이라도 맥락이 닿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오늘 밤에는 간절히 바래보지만 내일 아침 아들과 함께 눈을 뜨면 다시 마음은 이글거리겠지. 하지만 매일 밤 간절히 바래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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