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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Sep 22. 2022

고민할 문제에 대한 고민

무심코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끌릴 때가 있다. 며칠 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육아상담을 해주는 코너를 듣고 있었는데 고리타분한 농담을 늘어놓길래 요즘 같은 시대에 아직 저런 농담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 시시껄렁한 농담 뒤에 그렇게 날카롭고도 따뜻한 조언을 듣게 될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이를 망치는 가장 빠른 길은 아이가 해야 할 고민을 부모가 대신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고민이 아이가 해야 할 고민일지, 부모가 해야만 하는 고민일지를 단번에 가려내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죠”     


살다 보면 정말 드물게 절대 잊고 싶지 않은 말들을 만난다. 내 둔한 기억력 때문에 그 귀하디 귀한 말들을 잊을까 두려움이 앞서는 말들. 오늘 그런 말을 만난 것이다. 라디오에서 공기처럼 흘러가는 말이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내 마음에 안전하게 내려앉았다.      


이 말이 유독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은 내가 오랫동안 고민을 박탈당한 시간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반장 선거에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과로 가야 할지 문과로 가야 할지, 심지어 대학에 들어와서 전공을 무엇으로 삼아야 할지 모든 것은 엄마의 고민으로 남겨졌다. 다행히 20대 초반이 지나고 엄마와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엄마와 나의 혹독한 조정기가 지나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나에게도 고민다운 고민이 생겼다. 고민을 시작하다 보니 나의 10대가 조용히 말살당했다는 생각에 몸서리치게 억울했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오롯이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에게는 조금 더 많은 고민을 물려주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리고 그 느린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더더욱 힘들겠지만 나도 어디까지가 부모의 역할인지에 대해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민하는 아들을 응원하면서 함께 성장하고 싶다.     




그런데 모든 일은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사고와 시간이 육아로 가득 메워져 있기 때문일 것일까. 복직을 반년 남짓 앞두고 조직 혁신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이 “고민할 문제에 대한 고민”이 조직 혁신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공공기관의 혁신을 위해서는 목적을 명확히 설정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조직(steering function)과 그것을 이행하는 조직(rowing function)을 나누어야 하며, 설정된 방향성이 그것을 이행하는 조직에 명확히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이 1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방향성을 고민하는 총괄 조직은 현 조직이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다른 기관에 위탁할 것은 없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일단 이행단계로 넘어간 업무에 대해서는 이행 조직을 믿고, 일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고도 쉬운 원리처럼 느껴지는 이 구절들이 나에게는 왜 뒤늦은 깨달음으로 다가오는지. 입사 14년 차가 넘어가지만 내가 속한 조직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하는 업무는, 혹은 다른 부서에서 하는 업무는 당연히 해당 부서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어떠한 대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고민이 말살된 시간을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고민이었음을 이제야 서서히 깨닫는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회사의 그 어떤 조직에서도 이 중요한 고민들을 체계적으로, 주기적으로 하는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 더 절망적이다. 어쩌면 내가 조직 내에서 답답했던 이유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조직이 표류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지.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지 옆의 동료들에게 물어보아도, 상사에게 물어보아도 답답한 심정만 공유했을 뿐 뾰족한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건 모두가 어떠한 고민을 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도 부모가 고민할 것과 고민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고 하는데 그 복잡하고 비대한 조직의 일원으로 살면서 고민해야 할 것들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 부끄럽고 신기하다. 회사의 시간에서 풀려나와, 그리고 곧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요즘이다. 어쩌면 이 어정쩡한 시간이 회사에 대해 고민해야 할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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