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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Sep 09. 2022

현재에 충실한다는 것

강릉여행 짐꾸리기에 대한 글을 올린지 한달이 지나서야 강릉여행기를 올렸다. 내 개인 일기장이나 마찬가지인 이곳에 얼마만에 글을 올리든 탓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1주일에 두 편 정도 글을 쓸 수 있으면 참 좋겠고, 적어도 한 편의 글을 차곡차곡 모아간다면 의미가 크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의 그 작은 약속 하나 지키기가 이렇게도 힘들다. 7월 25일. 강릉에서의 시간을 빼곡이 채워나가던 그 날 오후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가 가벼운 증상으로 병원에 갔는데 CT상 암으로 추정되는 종양 같은 것이 보인다는 문자였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장의 종양이 암으로, 간에 점처럼 보이던 결절이 사실은 간을 다 덮을만큼 커다란 전이암으로 판명되었다. 엄마가 확진을 받기까지 한 달의 시간이 걸린 듯 하다.      


아빠가 1년 전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 받았을 때 그 폭풍같던 충격과는 다르게 엄마의 확진 소식은 꿈처럼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다. 대장암 4기를 진단받은 엄마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와 우리 가족은 별일없다는 듯 서로의 일상을 살아가다가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는 순간순간 그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프고 시리게 다가왔다.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는 아들 돌보는 이 외 모든 일들에 마음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아들이 잠든 조용한 밤이면 암환우 까페를 들어가 이 글, 저 글 마구잡이로 읽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으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손자가 보고 싶다며 더 열심히 찾아오는 부모님과 아들과 일상을 보냈다. 변함없이 평온한 날이었지만 마음은 죄어들었다.      


그러다 문득, 오늘이야말로 가장 건강한 부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아들의 가장 어리고, 귀여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대한 후회를 접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현재를 잠식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독여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낸다는 게 이렇게 어렵고, 귀한 일이다.      

우선은 지난 한달간 마음을 놓고 있었던 사소한 일상부터 회복하기로 했다. 아직은 이 수렁에서 하루하루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내기는 힘이 든다. 대신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이전에 꽤 정성을 기울여 꾸준히 해오던 일들에 다시 관심을 기울여보기로 했다. 엄마의 확진 소식에 그나마 마음의 힘이 날 때 띄엄띄엄 이어오던 전화영어를 성실하게 다시 시작했다. 일상을 함께 공유하던 동네 엄마들과의 소통에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어느새 한 달이 지나버린 브런치의 마지막 글에 이어 새 글을 올렸다.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의지가 조금씩 마음을 간지럽힌다. 아픈 엄마도, 우리도 예전과는 다르지만 새로운 일상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에 충실한다는 것. 그 간단한 삶의 진리를 여러 번 곱씹으며 생각할수록 간단치가 않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낸다는 것은 단지 현재만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과거의 깨달음에 기반하여, 미래의 방향성을 가지고서야 현재에 충실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도대체 40년간 어떤 깨달음을 얻어왔는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갑자기 막막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꾸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 우리가 마주할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죽음인데 나는 무엇을 위해 현재를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살아야 하는지,..삶보다 죽음에 훨씬 더 가까이 서 있는 엄마의 현재도 엄마의 의지에 따라 정말 충실하고도 충만하게 살아질 수 있는 시간인지...무거운 질문들만 남는다.      


나에게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내게 할 삶의 화두, 구체적인 질문, 그리고 집중할 수 있는 즐거움이 절실하다. 가장 가까운 가족을 죽음의 그늘에서 맞이하고서야 내 삶을, 내 현재를 무겁게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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