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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Oct 09. 2022

집중 집중 집중!

꽤 오랜 시간 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내부 세차를 하지 않아 시댁에 간 김에 아이를 맡기고 스팀세차를 하러 나왔다. 세차를 해주는 곳에서 차 상태가 너무 더러워 시간을 넉넉히 잡고 다시 오란 얘기를 듣고 다음 주에 다시 오겠노라고 하고 발길을 돌리던 차에 사장님이 심심했던지 말을 걸었다. 아이 키우느라 힘드시죠?라는 의례적인 말. 과자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차 안을 보고 아이의 나이를 짐작했을 것이다.     


사장님은 30대 중반의 젊은 남자. 결혼을 하고 싶지만 여사친들의 넋두리를 듣고 있자면 선뜻 용기 내어 결혼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백 가지 이유라도 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되묻게 되었다. 그리고는 24시간 누군가를 보살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고 어영부영 대답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매일 만나는 아이 엄마들과 수없이 넋두리를 하고, 서로의 고단함을 나눠지고, 우리 궁상맞은 모습에 웃다가 아이의 저녁 반찬을 걱정하면서 황급히 헤어지기를 반복했지만 정작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도 고단하게 하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새로운 사람이 던지는 낯선 질문은 항상 새롭다. 그 질문에 갇힌 듯 오후 내내 왜 내가 이다지도 힘들고 고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날 저녁, 시댁 어른들과 남편, 그리고 아이와 오랜만에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이자카야에 가게 되었다. 테이블이 10개 정도 되었는데 홀 서빙을 한 사람이 맡고 있었다. 살갑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례하지도 않은 알맞은 차가운 예의를 갖춘 젊은 여성 서버가 주문을 받았다. 메모지 없이 주문을 받았고, 주문한 메뉴는 오류 없이 정확하게 나왔다. 테이블이 많다 보니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요구들이 쏟아졌는데 그때마다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다가 갑자기 “집중”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그래. 내가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그 능력. 아이를 키우는 시간 동안 “집중”이라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녀는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그녀도 모르게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지금까지는 오롯이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어져 고되다고 생각해왔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회사생활 또한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회사생활은 어쩌면 육아보다도 잔인하게 나의 시간과 체력을 블랙홀처럼 먹어치웠다. 하지만 그 정신없이 돌아가는 회사라는 공간에서도 순간순간 일에 집중했다. 내가 처리해야 하는 프로젝트, 내가 연락해야 하는 사람, 내가 보고해야 하는 일을 몇 번이고 꼽아보며 집중했고,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집중하는 내 모습을 보며 가끔은 뿌듯해하곤 했었다.      


집중이라는 행위가 차분하게, 삶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사용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육아는 집중과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행위다. 욕망 덩어리의 아이의 비위를 맞추다 보면 어느새 내 에너지가 어느 방향으로 튀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아이가 잠이 든 후,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모아볼라치면 정리되지 않은 빨랫거리와 정신없는 집이 보인다. 그렇게 내 에너지를 한번 정돈할 시간 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또 하루가 열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집중”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 떠올랐을 때부터 육아 중에도 조금씩 “집중”을 해보게 되었다. 오늘은 아이와 산책을 나갔는데 아이가 아파트 옆 공사장에서 흙을 퍼내고 있는 굴착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보게 되었는데 그저 땅을 파내고 있다고 생각한 굴착기의 손놀림이 현란했다. 심지어 굴착기 앞에 달린 땅을 파내는 부위(버킷)를 분리했다가 반대방향으로 다시 끼우는 묘기까지 보고 말았다. 그야말로 나도 넋을 놓고 바라보다 아이가 가자는 말에 황급히 일어섰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는 무조건 내 시간을 그저 내어주기만 해야 한다는 나의 무의식이 그동안 작은 집중을 방해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과 함께 즐겁게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았을 텐데 말이다.     


명상을 하면 생각이 정리되고 그 과정을 통해 치유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책에 몰입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행위도 명상을 할 때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하니 집중을 통해 치유도 할 수 있는 셈이다. 육아를 하면서 어지럽고 날카로워지기만 했던 내 마음이 글을 쓰면서 조금씩 정리가 되었던 것은 어쩌면 소소한 감정을 문자로 풀어내어 하나의 글로 완성시켰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글을 쓰면서 즐겁게 집중할 수 있었던 그 행위 자체가 나의 마음을 치유해준 것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지금부터라도 작은 욕망 덩어리와 함께라도 사소하게 집중! 집중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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