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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Apr 13. 2023

스쿨버스 이즈 커밍!

아이는 생각보다 강하다. 아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미얀마에 도착한 날로부터 5일 정도 후였으니 한 달 반 정도가 지났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첫날부터 아이를 온종일 혼자 두고 가도 괜찮다고 하고, 아이는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내 품에서 통곡을 하는데 초보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낯선 나라에 와서 이렇게 큰 시련을 아이에게 안겨줘야 한다는 것을 조금 더 일찍 실감했더라면 차라리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짧게나마 보내는 게 나았을까 생각도 했었다. 아이의 첫 해외생활이자 사회생활이 혹독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서였을까. 잘 아프지 않던 아들이 배탈로 일주일을 고생하더니 또 눈충혈이 오고 코막힘과 기침이 시작되었다. 물론 의사는 미얀마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아 흔히 올 수 있는 질병이라고 했다. 가볍게 처방해 주었지만 그 잔병치레로 인해 어린이집을 또 며칠 쉬었다. 며칠을 쉬고 나면 어린이집 가기 전날 밤부터 "내일 어린이집 안 가도 돼"라고 하면서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데 마음이 아렸다. "내일 어린이집에 가서 선생님들하고, 누나들하고, 형아들하고 즐겁게 놀 거야"라고 설명해 주면 또 대성통곡. 어렵사리 달래서 밤잠을 재우고 나면 아침에 또 일어나서 "오늘 어린이집 안 가도 돼"라고 한다. "오늘 어린이집에 가서 재밌게 재밌게 놀 거야"라고 말해주며 어린이집 버스가 오고 있으니 빨리 준비하자고 아이를 달랬다. 아이는 못내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하고, 아침을 먹고, 아파트 로비로 나가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린다. 그때부터 또 울음바다다. 가기 싫다, 엄마팔 몰랑몰랑 더 만지고 갈 거다 온갖 핑계를 대며 내 몸에 철썩 붙어있다가 어린이집 버스가 오면 울음은 절정에 달한다. 어느 날은 대성통곡을 하면서 버스에 오르고, 어느 날은 선생님이 품에서 떼어 가듯 안아간다. 잘 보이지 않는 차 유리창 너머로 보면 아이는 버스에 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어린이집에서 보내주는 영상들을 보면 곧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즐거운 얼굴은 아니지만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원장 선생님들에게 당당히 요구하고(원장선생님 두 분은 한국분이라 특히, 원장선생님들에게 요구할 때는 당당하다), 선생님들의 율동도 곧잘 따라 하는 영상을 보며 무거운 시름은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다니시 시작한 지 1주일 정도가 지나자 원장선생님 방에서 30분 정도 짧은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2주일 정도 지나자 또래반에서 아이들과 같이 낮잠을 잤다. 이제는 길고 서러웠던 적응기간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3주째가 되자 어린이집에서 놀았던 친구들, 누나들 이야기, 그리고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나더러 "스쿨버스 쪼꼬미"라는 말을 해보라는 것이다. 내가 언젠가 아들을 "쪼꼬미"라 불러보았는데 아들이 그 "쪼꼬미"라는 말을 매우 좋아하여 자주 애칭처럼 불러주는 말이다, 아이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스쿨버스에 쪼꼬미가 타는구나" 하면서 대답해 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쪼꼬미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남편이 옆에서 듣더니 "스쿨버스 쪼꼬미?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스쿨버스 이즈 커밍이라고 하고 있는 거잖아"라는 것이다. 그래.. 이상하게도 아들은 아파트에 설치되어 있는 유선 전화기에다 대고 "스쿨버스 쪼꼬미"라고 한참을 얘기하고, 휴대전화에 대고도 한참을 얘기했었는데 무심한 엄마는 그게 그냥 "스쿨버스 쪼꼬미"인 줄 알았던 것이다.


아침마다 어린이집 버스가 아파트로 오기 5분 전에 선생님께서 "스쿨버스 이즈 커밍"이라고 전화를 주시는데 그 말을 여러 번 엿들었던 모양이다. 등원 한 달 반이 지난 요즘은 선생님의 스쿨버스 전화를 본인이 받고, 땡큐라고 대답도 한다. 얼른 나가자고 신발을 신고, 가방을 매고는 우리를 재촉한다. 그리고 어린이집 버스가 나타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에 안기듯 탑승! 한 달만 지나면 가방 메고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선배 엄마의 말을 믿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그런 존재였다. 이 험난하고 길었던 과정을 옆에서 다 지켜본 아파트 경비원과 안내원분들도 그 모습이 신기하고 우스운지 "이제 아이가 적응을 다 했네요"라고 한 마디씩 거든다.


미얀마는 아직 가정 보육이 일반화되어 있어서 두 돌이 지난 아들이 어린이집 막내다. 물론 또래 아이들이 서너 명 있지만 대부분은 누나와 형들인데 어리숙하게 보여서인지 막내로서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씩씩하게 잘 적응해 준 아들과 살뜰히 보살펴 주시는 선생님들, 원생들 모두에게 감사한 요즘이다. 앞으로 살아가며 아들의 앞날에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천천히 씩씩하게 이겨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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