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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Sep 26. 2023

엄마의 청소

엄마의 물건들은 소박하다 못해 궁상맞기도 했다. 새로운 물건들을 잘 사는 것 같다가도 또 오래도록 이상하리만치 집착하는 물건들이 있었다. 우리 아들이 끊어 먹은 부엉이 목걸이라든지, 이곳저곳 해진 싸구려 가방이라든지. 어찌 되었건 확실한 것은 엄마의 취향은 세련되거나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 엄마가 살아온 나날들이 엄마에게 취향이란 것을 착실히 쌓아 올릴 만큼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엄마는 정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수선한 편에 가까웠다. 덕분에 어린 시절 특별히 청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고, 자유롭게 산 만큼 청소하는 습관이 들지 않아 독립하고 난 뒤에도 집이 늘 어질러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엄마가 청소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우리 자매가 독립하고 조금은 홀가분한 상태가 되고 나서부터였을까. 싸구려 물건들로 채워진 허름한 집이어서 청소를 한다한들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고향집이 조금 더 안락해지고 쾌적해진 느낌이었다.     

 

그러다 아빠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엄마가 대장암 진단을 받자 둘은 암환자들 사이에 맨발 걷기의 성지로 알려진 대전 계족산 가까운 곳으로 급히 이사를 했다. 단출한 새 살림을 꾸렸다. 40년도 더 된 재건축을 기다리는 허름한 전세 아파트였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오래오래 그렇게 항암 치료도 받고, 계족산 산책도 하고 힘들지만 서로를 응원하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1년을 채우지 못하였다. 이사를 하며 새로 들인 돌침대만 덩그러니 집에 남아버렸다. 엄마가 참 좋아하던 돌침대였다.      


엄마는 본인의 마지막을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걸까? 마지막 수술 날짜가 잡히기도 전이었던 것 같다. 새로 이사한 집이 새로운 터전이 되자 고향집은 급속도로 시들어갔고, 언젠가는 대청소를 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늘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 아빠 두 사람은 조용히 고향집에 내려가서는 자잘한 세간살이, 쓰지 못하는 물건들을 고물상 트럭 한가득 실어 정리를 했다. 그때까지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이렇게 짧으리라 생각지 못하고 둘 다 성미가 참 급하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엄마의 수술 후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창원 고향집으로 가서 마지막 엄마의 짐정리를 하려고 집을 둘러보았다. 엄마가 있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었고 책 빼고는 거의 모든 세간살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버릴 것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가 어릴 적 어수선하던 집안을 떠올려 보면 엄마의 마지막이 이렇게도 정갈하고 가벼울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렇게 쓴웃음을 지으면서 가벼운 짐정리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연이은 아빠의 항암일정으로 부랴부랴 대전집으로 왔다. 엄마가 미처 치우지 못한 것들이 많으리라 그렇게 예상하면서 아파트 문을 열었다. 하지만 집은 의외로 고요하고 깔끔했다.      


물론 엄마의 흔적이 물씬 묻어 있었지만 크게 버릴 것이 없었다. 어지러울 것이라 생각했던 냉동실도 의외로 단출했다. 조금만 더 어지러웠더라면 좋았을걸.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 내가 조금이라도 치워주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남은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치우고 갔을까 싶어 마음이 아렸다.      


한편으로는 나도 엄마처럼 단출하게 살다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궁상맞지 않을 정도로, 내가 이 세상에 살다 갔다는 흔적을 조금만 남기고 그렇게 가볍게 살다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가 않더라. 엄마의 시의적절한 마지막 청소처럼 나도 주변을 정돈하며 필요한 것들만 남겨봐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이 무기력하고 색깔을 잃어버린 것 같은 요즘. 이상하게 열지 않던 싱크대 선반을 열어보고 한 칸 한 칸 정리를 하고 있자면 마음이 편해진다. 엄마의 깔끔한 마지막이 나에게는 작지만 따뜻한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엄마의 그 마음을 자꾸자꾸 되새기고 지키고 싶어 진다. 부디 소소한 청소가 나에게 오랜 안식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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