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지다
중심을 잡으려 애쓰고 애썼지만 결국 망가졌다. 이런 시기엔 모든 게 꼬여있다. 잘못된 판단으로 엉뚱한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후회하고, 속상하고, 자괴감이 들고, 또 잘못된 선택을 하고. 무한 반복되는 이 굴레를 어딘가로부터 끊어야 정상궤도로 진입할 수 있는데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한 건지, 아직 저지대에 머물러 있어야 할 시기인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한 달에 커피 한 잔을 겨우 마실까 말까 하던 나였는데 요즘엔 매일 한 잔씩 마신다. 심지어 하루에 두 잔을 마셔도 잠이 솔솔 온다.
이른 아침 공복이나 늦은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손과 뇌가 흔들거리고 흥분되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고 잠도 못 이루던 그때는 커피를 잘 마시고 싶었다. 남들처럼 커피 한 잔이라도 맛있게 즐기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내 몸의 기운은 최상이어서 모든 기운에 깨어있었다. 내가 우산을 챙긴 날이면 어김없이 비가 왔다. 몸의 기운을 충분히 믿고 따르며 몸이 시키는 대로 살았다. 시금치를 먹고 싶으면 시금치를 먹고, 양파가 땡기면 양파를 먹고. 요즘엔 완전히 망가졌다. 몸의 기운을 헤치는 음식들이 주로 먹고 싶다. 탄산수, 커피, 쿠키, 빵, 아이스크림 등이 주로 먹고 싶다. 이건 몸의 기운이 아니고 피곤하고 지친 나의 뇌가 시키는 일들.
망가진 기운을 되찾고 싶은데 오늘도 늦은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쿠키를 먹는다. 홍콩표 제니 쿠키를 벌써 4통째 쟁여두고 먹고 있다. 망가진 몸의 기운을 조금씩 올리고 싶다. 맑았던 내 기운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커피부터 끊어야 가능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