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일루 와봐요.”
나는 혼자 내 몫의 밭을 갈고 싶을 뿐이었고, 주말 오전에 약간의 노동을 더 해 지긋지긋한 잡념을 떨치고 싶을 뿐이었고, 평소보다 미세먼지가 덜한 오늘 같은 날에 3월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을 뿐이었다. 텃밭 관계자 아저씨의 과한 친절과 선을 넘는 접근(?) 덕분에 나이 많은 여성으로서 대한민국에서 홀로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꼈고 혼란스러웠다. 뭐 하나 쉬운 게 없구나.
-텃밭 가꾸기에 도전하게 된 계기
이런 분야에 관심 갖게 될지 전혀 몰랐다. 20여 년 전부터 부모님께서 소일거리로 두세 평 정도의 밭에 무언가를 심고 가꾸던 곳에 종종 따라다녔다. 어린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외출할 수 없으니 데리고 다녔고 따라다닌 게 전부다. 그 공간을 빨리 벗어나길 바라는 무료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1~2년 전부터 영양제를 꼭 챙겨 먹는다. 종합비타민, 마그네슘, 루테인, 프로바이오틱스, 프로폴리스 정도. (오메가-3도 먹다가 고래의 식량을 굳이 내가 뺏어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지금은 먹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보조제를 섭취하면 보통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쉽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약을 챙겨 먹는다. 하지만 대여섯 가지의 약을 매일 먹는 게 마냥 좋지는 않다. 무언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어릴 적부터 자연치유를 믿고 몸의 본능을 따르며 -큰 병이 아니라면- 나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 몸의 에너지와 컨디션 유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도전하게 된 것이 텃밭 농사이다. 차갑고 딱딱하게 얼어붙은 추운 겨울을 버티다 봄을 맞이하여 땅을 뚫고 나온 냉이와 쑥이 가진 에너지를 믿는다. 같은 맥락으로 겨울 동안 움츠러든 생기를 되찾기 위해 봄날 쑥 캐기를 즐긴다.
내가 심은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고, 나의 노동과 시간의 흐름 자연의 보살핌이 담긴 그 결실의 열매를 먹으면 알약 따위 덜 먹어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첫술에 배부를 일 없으니, 농사를 잘 짓든 못 짓든 심었으니 뭐라도 자랄 것이라는 건 부모님의 지난날을 지켜보면서 알고 있으니까 부담 같은 건 없었다. 여름철 모기떼와 잡초와 싸워야겠지만, 잠깐 힘들고 간지럽고 말 테니 그쯤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주말 구청에서 관리하는 내 몫의 밭을 배정받고 몇 가지 씨앗을 뿌렸고, 오늘 지급받은 퇴비로 땅을 엎어줄 계획이었다. 무엇들로 바쁜 시기지만 즐겁고 알차게 주말 한낮을 보낼 계획이었다. 비료와 농기구를 챙겨 와 밭에 뿌리고 흙과 섞고 돌멩이나 비닐 등을 걷어내며 살짝 땀도 나고 기분도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나만의 시간으로 알차게 보내려던 계획은 조금 어그러졌다. 어설픈 나의 행동에 지켜보던 관리자 한 분이 다가오셨다. 다른 도구를 챙겨 오라며 시범을 보여주신다 하셨다. 그리고 나의 밭은 전문가의 솜씨로 말끔하게 정돈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편이 딱딱해져 버렸다. 시범만 보이고 가실 줄 알았던 그분은 밭 전체를 갈아엎어 주시며 이런저런 농사에 도움이 될 이야기들을 전해주셨지만, 그에 보태서 ‘나이가 몇이냐, 결혼했냐, 다음에 내게 찡긋 신호를 보내면 도와주겠다’ 등 많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과 같은 나이라며 동질감을 강요하셨지만, 본인의 딸이 칠십몇세쯤 되는 할아버지와 길고 긴 대화를 나누는 건 괜찮을지 생각은 안 해보셨을까? 그분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흙과 거름이 덜 섞인 땅이 되어 좋은 수확을 기대할 수 없는 밭이 되겠지. 어설픈 노동 덕분에 그에 비해 적은 수확물을 얻겠지만, 내가 이 곳에 온 이유는 그저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다. 처음 시작했으니 어설픈 게 당연하다. 앞으로 몇 개월 동안 최소 일주일에 한두 번은 이 곳에 들락거려야 할 텐데 올 때마다 내게 말 걸어오시면 어쩌지? 그럴 때마다 조언을 건네고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소일거리들을 빼앗아 가시면 어쩌지?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분께서 나누어주신 농사 지식을 잘 익힌다면 내년부터는 혼자서도 능숙하게 해낼 수 있게 되겠지. 하지만 훅 내 영역을 침범해온 것이 상당히 불편했다. 함께 온 사람이 있었다면 상대방의 과한 친절이 덜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 순간 나는 온전히 혼자였다. ‘내가 많이 도와줬으니 일이 빨리 끝났죠. 어서 정리하고 가요.’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이 밭은 어쩌고, 저 밭은 어쩌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과연 나는 올 한 해 내 목표를 완성할 수 있을까? 다른 근심거리를 떨쳐버리고 해소하고 싶어서 이곳을 찾은 건 너무 큰 바람이었나?
긴 대화를 마치고 빙 돌아와 나의 밭에 서서 사진을 찍고 다시 돌아 나왔다. 감사했지만 부담스러웠다. 많이 불편했지만 선뜻 뿌리칠 순 없었다. 어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따지고 보면 밭 갈아준 게 전부고 ‘감사합니다.’ 하고 나면 그뿐이다. 이런 사소한 일에도 불편함을 느끼는 나는 정말 까다로운 사람이구나 자책하며 돌아오는 마음이 무거웠다. 앞으로 잘 버틸 수 있을까? 애나 어른이나 남녀노소 누구와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평정심을 지키고 싶은데 참 어렵다.
-오늘 배운 것
3월 초~중순에 밭에 거름을 준다. 밭에 골고루 거름을 뿌린 후 끝이 꺾여있는 삼지창처럼 생긴 도구를 사용하여 땅에 깊이 던지고 시소 움직이듯 지렛대 원리를 이용하여 땅을 엎는다. 최소 15센티미터 이상의 땅을 골고루 뒤엎고 그러면서 나온 돌은 옆으로 밀어낸다. 그다음 낙엽 긁는 도구처럼 생긴 (살이 10개 정도 있는 꺾인 포크 모양) 도구로 흙의 높낮이를 맞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작은 자갈돌도 고랑으로 밀어둔다. 방금 쓰던 도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조금 작고 모서리가 둥근 도구를 이용하여 밭고랑에 쌓여있는 돌무더기들을 긁어 한쪽에 모아둔다. 10~20여 일 동안 거름이 숙성될 테고 4/6쯤에 모종을 심으면 끝. 씨앗을 심으면 새들의 먹이가 된다. 비닐을 덮으면 되지만 환경에 좋지 않으니 모종을 심는 게 새먹이가 되지 않는 방법. 지금 씨앗을 심으면 아직 숙성되지 않은 거름 때문에 씨앗이 자라지 못한다. 파 같은 생명력이 강한 건 지금 심어도 괜찮다.
이쯤 적으니 아저씨의 과한 친절에 감사해야 하나 싶다. 마음이 불편한 건 여전하지만, 감사한 부분도 있고. 모르겠다. 나는 좀 예민하고 많이 까다로운 사람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