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안녕 낯선 친구
텃밭에 낯선 풀이 생겼다. 엄마가 심어둔 쌈 채소 중 하나인가? 처음 보는 모양인데 반질반질한 은녹색이 매력적이다. 알로에 같기도 하고 오동통하고 뾰족한 잎사귀 모양이 보기 좋아 그냥 두었다. 잡초라 할지라도 뿌리째 뽑지 않고 가위로 잘라서 덮어주는 방식의 자연농법으로 텃밭은 가꾸고 싶었기에 이름 모를 잡초라 할지라도 뜯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농작물이 덜 자라더라도 공존하는 텃밭을 만들고 싶었다.
그게 4월 초니까 벌써 한 달이 더 지났다. 이름 모를 이쁜 풀은 쑥쑥 자라났다. 상추와 깻잎을 몇 번 따다 먹고, 완두콩이 덩굴 덩어리로 자라날 동안 잡초도 함께 자라났다. 쑥쑥 자라더니 어느 날인가 꽃망울이 생기더니 할미꽃처럼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할미꽃인가?’
조만간 이쁜 꽃을 볼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가던 중 우연히 길가의 양귀비 화단에 눈이 머물렀다.
‘양귀비였나?’
고개를 떨군 꽃망울과 잎사귀의 모양이 내 밭에 있는 그 녀석과 거의 비슷했다. 다른 텃밭엔 잔디 같은 흔한 잡초가 자라고 있던데 내 밭에는 양귀비가 찾아오다니 신기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밭에 찾아갔다.
정말 새빨갛고 아름다운 양귀비꽃을 만날 수 있었다. 맨드라미같기도 하고 겹 튤립같기도 한 특이한 꽃모양의 양귀비. 누구를 유혹하려고 저렇게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는지, 수많은 텃밭 중 내 밭이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말해주듯 내 밭에 찾아온 녀석이 반갑고 고마웠다. 씨를 받아서 내년에도 양귀비꽃을 보고 싶었다.
꽃마다 종자에 따라 소분류되는 각자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 녀석의 진짜 이름이 궁금했고, 다양한 통로로 양귀비의 숨은 이름을 찾았다.
‘아편 양귀비?’
’겹꽃 양귀비’ 같은 제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는데 무서운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 녀석은 진짜 양귀비였다. 양귀비 축제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양귀비는 마약 성분이 없는 꽃 양귀비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진짜 양귀비란다. 게다가 5월은 양귀비 집중단속 기간으로 단 한 개의 양귀비라도 심고 키워서는 안 되며 발견 즉시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단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 눈의 즐거움을 위해 불법 행위를 하고 싶진 않았다. 본의 아니게 내가 그 꽃을 키워냈고, 누군가가 그걸 악용한다면 내가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된다. 어제 막 피어난 아름다운 꽃을 당장 없애야 한다니 잔인했고, 속상했다. 프랑스에서는 일부 양귀비를 관상용으로 키우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프랑스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는 불법이란다. 이해는 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볼 수조차 없다니 안타까웠다.
복잡한 마음으로 부모님께 부탁을 드리고 출근을 했다. 이후 이야기는 부모님께 들은 것이다. 텃밭 관계자분들께 해결방법을 여쭈었더니, 그 동네에는 씨앗이 곳곳에 날아다니는지 흔히 보이는 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찌 될지는 모르니 꺾어서 버리는 편이 나을 거라고 조언해주셨다. 흰 양귀비는 마약용으로 신고대상이지만, 이건 이 동네에서 흔하디 흔한 양귀비니까 적당히 처리하면 될 것이라 하셨다. 활짝 피어오른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아름다운 꽃잎 하나하나 바닥으로 떨어져 속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꺾여졌고, 다신 내 밭에서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아름다움은 한순간이다. 그 한순간 피어나기 위해 오랜 시간 뜸 들이기를 한다.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독을 품었지만, 악용하는 자들에 의해 스스로 개체 수를 줄이기를 시도한 양귀비. 인간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며 변화하듯 양귀비도 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독을 조금 줄이고, 그 아름다움을 많은 곳에 보여주었으면. 아주 잠깐이었지만, 잠깐 활짝 피어있는 모습을 보이고 누군가에 의해 꺾여야 하는 슬픈 운명을 지닌 양귀비. 잠깐 보았던 아름다운 황홀함에 취해 찰나의 아쉬움을 그리워한다. 인간사가 그렇듯 양귀비의 생도 한순간 스쳐 지나갔다.
안녕 나의 낯선 친구. 다시 만날 순 없겠지만, 너는 정말 아름다운 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