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독감

by 아무

지난 주말 외출할 때 이상하게 목이 따갑고 으슬거린다 싶더니 독감에 걸려버렸다. 그 유명한 A형 독감. 지난가을에 예방주사를 맞았건만, 면역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저질스러운 내 몸뚱이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나 보다. 시간과 돈을 들여 일부러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건만 무용지물이었다.

독감이란 건 예상보다 끔찍했다. 체력이 부족할 때면 늘 잔기침을 달고 살아서 원체 그러려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말았는데, 몸통, 폐가 조이는 느낌과 추위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오래전 연인과 다투고 홀로 남겨진 ktx 정거장에서 느꼈던 온몸이 파르르 떨리면서 뼈가 시리듯 아팠던 찬기처럼 고통스러웠다. 프로폴리스, 테라플루, 한약 감기약, 무청, 백도라지 차 등 비상 감기약으로 준비된 모든 것을 입으로 때려 넣고 잠들었지만, 다음날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옷을 갈아입으며 느껴지는 찬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무섭도록 시린 오한 덕분에 샤워할 용기가 나지 않아 머리만 감고 적당히 준비한 후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설마 했지만 역시나 독감 판정을 받았고, 타미플루 복용 시 주의사항을 들었다. 머릿속이 굳어버렸다. 뭐부터 해야 하는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일단 출근하지 못함을 먼저 전달했고, 오늘 당장 해결해야 하는 스케줄을 조율했다. 당장 약을 먹어야 했기에 죽을 샀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업무의 연장선이었다.

병원을 오가는 동안 끝도 없이 흘러내리는 식은땀과 기운 없음이 내 생각과 판단을 더디게 만들었다. 나는 철저히 ‘을’로 사고하고 있었다. 내 몸과 마음 따위를 돌보기보다 ‘몸 관리를 소홀히 해서 너의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게 함’을 미안해했다. 해야 할 업무가 우선이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착한 사람 병에 걸린 듯, 본 투 비 시녀인 듯 나는 그렇게 나의 상태나 감정 따위는 철저히 억누르고 숨긴 채 남은 일 처리를 했고, 죽을 먹고 누웠다. 약 기운에 취해 비몽사몽 하면서도 또 통화했고, 밀려있는 일들을 정리했다. 아무도 내게 그리하라고 지시한 이는 없었다. 자꾸만 을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내가 안타깝지만, 무언가를 표현한다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이가 없으니 들어줄 만한 것들을 먼저 챙겼고, 인정받기 위해 일을 더 했다. 그건 대가 없이 무언가를 받아본 경험이 적었던, 나의 살아온 방식이었다.

곁에 누구라도 있었다면 의지하며 아픈척했을 테고, 챙김 받고 나를 먼저 토닥였겠지만, 나는 혼자였다. 오롯이 혼자서 아픔 같은 걸 견뎌야 하니까, 아파봤자 챙겨줄 누군가는 없으니까, 참으면 그만이니까. 언제나 늘 그렇듯이 나의 감정 같은 걸 숨기는데 익숙하다. 약한 척한다고 돌봐줄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은 나의 감정 표현을 가둔다. 그런 방식에 너무 길들어있어 나의 감정 따위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은 절망적이다. 아무도 나를 나만큼 잘 알지 못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를 알아야 상대방의 감정이나 표현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건만, 내가 나를 모르니 상대방의 그것도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청춘이 끝나가는 시기임에도 여전히 관계에 서툴다. 늘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지만 사실 그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관계는 어느 한 쪽만 노력해서 유지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때로는 끈끈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유동체였다.

이제는 나의 마음과 나의 감정을 챙기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나를 잘 보살펴야 남과 소통할 수 있고, 서로의 관계가 생기면 지금처럼 ‘을로 살아가기’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들에게 인과관계가 정확히 성립되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상태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자꾸만 작아지는 내 모습은 누가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몸 상태와 기분과 에너지의 방향이 어디인지 알아내야 한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와, 함께하는 우리를 위해서.





그래서 당장 부모님께 연락했고, A형 독감은 전염되며, 몹시 아프고 힘든 병이라고 도움을 청했다. 부모님께서 한걸음에 달려오셨고, 극진한 병시중을 받았다. 부모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