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커피일기

나의 가족, 소중함을 기억하기

by 아무

비 오는 수요일 아침,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와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를 내리고 쿠키 몇 개를 준비했는데, 촵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쿠키를 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강냉이와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한껏 차려입은 신사 같은 모습과 강냉이가 오버랩된다.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그 둘은 내가 추억하는 할아버지의 소중한 모습이다. 외출하실 때면 언제든 손수 다린 빳빳한 삼베 저고리와 바지, 모자를 세트로 갖춰 입으시곤 했다. 여름이라면 한지로 만든 대나무 부채까지 한 세트다. 잡지 광고나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을법한 깨끗하고 단정한 노인의 모습. 그게 바로 나의 할아버지였다. 나는 나의 할아버지보다 더 멋쟁이 노인은 본 적이 없다.

강냉이는 할아버지의 최애 과자이다. 아마도 오랜 세월 피워온 담배를 끊고 입과 손이 심심해 생긴 버릇 같은데 식탁 끄트머리에 구부정한 자세로 멍하니 앉아 오물오물 참 맛있게 드시곤 했다. 언제나 자신에게 엄격하고 반듯한, 마치 도덕책에서 나온 듯한 할아버지와 강냉이는 정말 안 어울렸다.

가끔 할아버지를 뵈러 갈 땐 주전부리를 사는 재미가 있었다. 강냉이 말고 좀 더 맛있는 간식을 드시길 바라는 마음에 코코넛 칩이나 바나나 말린 것 등 동네 슈퍼에 팔지 않는 소소한 간식거리를 챙겨가곤 했다. 내가 가져간 간식도 맛있게 드시던 할아버지가 문득 그립다.



일제 강점기 시절, 1929년에 태어난 할아버지는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일본인 교장 선생님 댁에서 함께 사셨다고 한다. 통학하기에 집이 너무 멀리 있는, 똘똘하고 야무진 학생을 예쁘게 봐주신 선생님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어렸을 적부터 야무짐을 인정받으며 그렇게 1년을 그 댁에서 함께 사셨다고 한다.

그 시절 학교는 누군가가 직접 알리는 소리를 내어 수업 시작을 전달하곤 했는데, 나의 할아버지께서 그 역할을 하셨다고 한다. 학교의 대표로 단상에 올라 트럼펫을 불며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당당한 한 소년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는 할아버지의 어릴 때나 청년 시절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아닌 시절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살아생전 수많은 고생을 겪었기에 덮고 싶은 기억이었을까, 아무도 묻지 않아서일까. 할아버지에게도 열정 가득한 젊디 젊은 시절이 있었을 텐데 내 기억 속 할아버지는 흰머리가 지긋한 노인일 뿐이다.


파스와 수첩을 보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추억하다.

2014년 겨울에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는 본인 스스로 응급실에 전화해 생의 마감을 준비하실 만큼 강인하셨다. 누가 죽음 같은 걸 홀로 받아들이고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을까? 그런 게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단단히 마무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께서 남아있는 우리 가족에게 전해주시는 바람을 알 수 있었다. 잘 버텨내라고, 할 수 있다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던 날을 기억한다. 대부분을 태우려 분류하다 ‘파스’와 ‘다용도 칼’을 챙겨 왔다. 내게 할아버지의 파스는 정말 힘들 때 한 개씩 꺼내어 바르는 만병통치약이다.

그날 나는 할머니의 기록이 담긴 수첩도 챙겨 왔다. 쑥스러워하시며 뭘 그런 걸 가져가냐고 하시는 할머니의 말에 씨익 웃으며 가방에 넣었는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든다. 먼 훗날 나의 손자 손녀가 내 글이 궁금하다고 할지라도 난 절대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내 기록, 나만의 이야기니까. 철없는 손녀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신 할머니의 일기장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땐 왜 그걸 몰랐을까.



우리의 여행을 허락해주신 할머니

2018년 8월, 어머니와 단둘이 여름휴가를 떠나기 위해 공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 탑승을 몇 분 남겨두고 할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미 수속을 마친 후라 비행기에 짐이 실린 후였다. 현지 숙소나 열차표 등 예약 완료된 것들을 환불할 수 있을까, 그까짓 게 대수랴, 어떻게 해야 하나 앞이 캄캄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고 하셨기에 비행기를 탔고, 여행지에 도착한 사이에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니 안심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약 한두 시간 정도, 비행기에서 보낸 짧은 동안 아찔했고, 버텨주심에 감사했다. 여행하는 내내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어딜 가든, 무얼 먹든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할머니와 못다 한 인사를 나눴고, 그리고 3일 후 먼 곳으로 떠나셨다.





어머니와 함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문득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조금 엉뚱한 할아버지 같다. 어떤 부분은 할아버지를 닮았고, 나머지 부분은 할머니를 닮았겠지. 나의 어머니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내게 가장 소중한 우리 가족의 역사가 기억 저 너머로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문득 어머니, 아버지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마냥 흘러가기 전에 담아두어야겠다. 나의 뿌리와 역사를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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