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코로나19로 잉여인간이 된 지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나간다. 언제부터 쉬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백수 생활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내가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먹고, 자고, 뒹굴뒹굴하며 보내는 건 며칠 정도는 좋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날짜도, 요일도 점점 무의미해졌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 혼자 멈춰있는 것이 즐겁지가 않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보내기만 한 건 아니다. 내 생계를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하는 자영업 종사자로서 업무 계획도 세워보고, 마케팅, 홍보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 개발도 하고, 대청소도 하고, 그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잔업들을 하나둘씩 꺼내어 정리하고 있지만, 업무의 시작도 마감도 없고, 언제 다시 일하게 될지 기약도 없고, 매출도 없으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제안서를 제출하면 반려당하고, 반려당하고, 또 반려당하는 심정이랄까.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더 이상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알 수 없는데 자꾸 반려당하는 이 상황이 보통의 회사원들이 업무를 하며 겪는 무기력과 비슷하지 않을까.
비슷한 업계 종사자가 아닌 다른 관계의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같은 반응을 보인다. 너만 힘든 게 아니고 모두가 힘들다는 것. 그건 그렇긴 하지만, 내가 나만 힘들다고 말한 건 아닌데. 나도 그들의 힘듦을 알 수 없으니 서로 공감하지 못할 수 밖에. 다들 마음이 편치 않으니 반응도 여유롭지 않은가 보다.
뭐라도 하고 싶은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1시간이면 끝낼 서류 정리가 끝도 없이 늘어진다. 어제는 문서 한 장을 작성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그 와중에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선거 공약하는 음악소리는 상당히 별로다. 올림픽도, 생계도, 학교도, 모든 것이 멈춰 있는 이 시국에 ‘나만 살아남겠다.’ 같은 비겁한 소음으로 느껴진다. 책도, 글도, 커피도, 힘들 때 나 스스로를 달래던 모든 행위로 부터 쉽게 몰입되지 않는다. 소소한 즐거움이 사라졌다.
코로나로부터 도서관이 휴관하고 나서 책을 읽지 못하는 답답함덕에 오랜만에 새 책을 구입했다. 김민식 피디의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푸른 숲 출판사, 2020)’인데, 제목에 감정 이입하여 코로나로부터 이기고 싶어 구입한 이 책은 김민식 피디가 본인이 근무하던 mbc 방송국의 노조 부위원장을 맡으며 겪었던 경험담을 엮은 책이다. 김민식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 사람 이렇게도 치열하게 살았구나, 이런 사람들이 방송국에서 피디를 하고, 글을 쓰고, 책도 내는 거구나. 단순 무식한 나와는 참 다르구나.’ 같은 걸 느꼈다.
어제 읽은 한 부분을 발췌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
힘든 시기가 계속될지라도 웃음을 잃지 말라고 다짐한다. 힘든 때일수록 웃음의 힘으로 버텨야 하니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때는 일단 웃고 보련다. 코미디 피디는 우리 시대의 광대다. 광대가 웃음을 잃어버리면, 희망은 어디에 있겠는가. -김민식,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pd저널, 2013.02.25 (147)
코미디 피디는 아니지만, 일단 웃고, 웃음의 힘을 믿고 버텨 봐야겠다. 어딘가에 희망이 있긴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