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커피일기

보통의 주말

일단 웃자, 버텨내자.

by 아무

반려견과 함께 즐겨 찾는 커피숍에 방문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방문하는 곳이라 근처를 지나갈 때면 강아지가 앞장서서 찾아가는 곳이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책을 꺼냈는데 아뿔싸, 잘못 가져왔다. 이미 다 읽고 도서관에 반납하려고 따로 보관해둔 책을 무심코 들고나왔나 보다. 읽어야 할 책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지. 좋아하는 이승우 작가의 책이니까 오늘 한 번 더 읽어도 괜찮다.


요즘은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삼시 세끼 밥만 잘 챙겨 먹으니 살만 찐다. 그나마 식욕이라도 있으니 다행인 건가. 백수 생활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내가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먹고, 자고, 뒹굴뒹굴하며 보내는 건 며칠 정도는 좋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날짜도 요일도 점점 무의미해졌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 혼자 멈춰있는 것이 즐겁지가 않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보내기만 한 건 아니다. 내 생계를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하는 자영업 종사자로서 업무 계획도 세워보고 마케팅 홍보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 개발도 하고, 대청소나 그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잔업들을 하나둘씩 꺼내어 정리하고 있지만, 업무의 시작도 마감도 없고 언제 다시 일하게 될지 기약도 없고 매출도 없으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제안서를 제출하면 반려당하고 반려당하고 또 반려당하는 심정이랄까.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더 이상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알 수 없는데 자꾸만 검토를 요청받을 때 회사원들이 겪는 무기력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동종 업계 종사자가 아닌 다른 관계의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너만 힘든 게 아니고 모두가 힘들다는 것. 그렇긴 하지만 나만 힘들다고 말한 건 아닌데. 나도 그들의 힘듦을 알 수 없으니 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다들 마음이 편치 않으니 반응도 여유롭지 않은가 보다.


뭐라도 하고 싶은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1시간이면 끝낼 서류 정리가 끝도 없이 늘어진다. 어제는 문서 한 장을 작성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그마저도 마무리된 건지 모르겠다. 업무의 사이클이 늘어지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건지, 지금 하는 일이 필요하긴 한 건지 근원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너 정도면 최악의 상황이 아닌데, 버틸만해 보이는데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 거니.'


같은 말을 종종 듣는다. 아니 자주 듣는다. 그러게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왜 이리 불안에 갇혀있는 걸까. 예상했던 것만큼 견디지 못할 만한 상황이 생기지 않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찬다. 나의 위치와 상황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조율하는 방식은 주변 사람의 조언이나 관심이 더해져야 오르내림의 폭을 줄이고 중심을 찾아가나 보다. 사회적 거리 두기 덕분에 모든 인간관계가 느슨해지면서 점점 더 고립되어가고 있다. 자꾸만 더 비판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관계없는 홀로서기는 불가능했다.


나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내가 답답한데 지켜보는 사람들도 나만큼 힘든 건가. 내가 가장 괴로울 텐데.




요즘은 평균 7~8시간은 자는데도 매일 몽롱하다. 수면시간이 정말 충분한데도 몸의 피로도가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다. 이 시국에 고민 걱정 하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왜 유독 나 혼자 세상사 고민 전부 짊어진 사람처럼 지치고 힘겨울까.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충전하지만, 속만 쓰릴 뿐 변하는 건 없다. 어젯밤 찜찜하게 마무리한 일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음이 한몫하고 있다.


예전처럼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일할 수 없어서 손님 하나 없는 일터에 나가 청소도 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우며 몸의 컨디션을 되찾으려 노력해보지만 쉽지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할 그 날을 그리워하며 무한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 같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올까?


쓰린 속을 부여잡고 오늘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앞으로 나는 무얼 먼저 해야 할까. 어떤 걸 먼저 지켜내야 할까. 사람 사이의 교류 같은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마음이 힘든 순간에 반려견이 곁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책과 강아지, 커피 한 잔이 나를 위로한다.







책 속에서 책이 나온다. 책을 읽다가 나는 아직 쓰이지 않은, 그러나 곧 쓰일 또 다른 책을 발견한다. 아직 쓰이지 않은, 곧 쓰일 그 책의 저자는, 내가 그 책의 불러일으킴에 제대로 반응한다면, 나다. 수없이 많은 작품이 실은 그렇게 태어난다. 그러니까 책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수없이 많은, 몇 권인지도 모를, 미래의 책들의 자궁이다. (73), '소설을 살다'(마음산책,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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