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세상 읽기

혼자가 뭐 어때서

by 아무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부모님께서 내가 사는 집에 다녀가신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양파, 고추, 옥수수, 방울토마토, 감자 등 텃밭 농사지은 채소도 가져다주신다.


과년한 딸자식이 결혼으로 완전한 독립을 이루길 바라셨지만, 사람 일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1년 전부터 가족이 함께 살던 큰 집에 나만 남게 되었다. 나의 공간이 아닌, 온 가족이 살던 집에 홀로 살아가려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처음 몇 달은 남의 집에 얹혀 살 듯 살금살금 지내다가, 내가 생활하기 편리한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설거지함 속 식기류, 청소 도구, 수건이나 침구류, 계절 옷 등을 사용하는 순서나 방향, 보관 장소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 내 방식대로 정돈하고 나니 비로소 내가 사는 집이 되었고, 가끔 방문하시는 부모님께서 달라진 부분을 어색해하시곤 한다.


어제저녁, 두어 달 만에 엄마가 오셨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여는 순간 따끈한 기름 냄새가 폴폴 풍겨왔다. 믹서에 곱게 갈아 만든 감자전, 생선구이, 계란 물을 입힌 호박전, 내가 좋아하는 어린 쌈채소까지. 밥 하나, 찬 하나, 국 하나가 전부이던 평소 나의 식탁과 차원이 다른 정성 가득한 저녁상을 받으려니 묘한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평소 식사시간으로 30분 이상 소비한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느라 오래 걸리는 건 아니고, 반찬을 고를 때에도 입에 넣을 때에도 느릿느릿,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먹는 행위를 즐긴다. 소화기관이 튼튼하지 못해 자주 체하는 몸 상태를 알기에 애초부터 천천히 먹곤 한다. 반면 엄마는 평생 해온 직장생활에 길들여서 ‘해치운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허겁지겁 식사를 하신다. 작년 봄 은퇴하셨고 이제는 급할 것이 없는데도 짧은 식사 시간은 여전하다. 그 덕에 소화 기관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지만, 습관을 바꾸긴 어려운가 보다.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밥을 먹으며, 속도를 맞추려고 꿀떡꿀떡 삼키다가 소화불량이라는 사달이 났다.


소화제 한 알을 입에 넣은 후, 소화불량을 핑계로 동네 공원 산책을 나섰다. 엄마가 떠난 1년 동안 우리 동네는 변화가 많았다. 지자체 공원 정비 사업으로 조금 더 예뻐진 모습을 함께 즐기고 싶었다. 평소 밤 9시면 곯아떨어지는 엄마지만, 오랜만에 만난 딸과 함께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까지 공원을 걸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내가 일어나서 밥을 먹기 전, 오전 몇 시간 동안 어제 함께 다녀온 공원 산책을 다시 다녀온 후, 세탁기를 돌리고, 은행 업무를 보고, 마트에서 생필품을 구매해오셨다. 그리고 나서 10분 정도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시골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셨다.


아직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엄마는 이미 출발하셨고, 나는 엄마의 흔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빨랫줄에 서로 너무 가까이에 붙어 널려있는 이불과 옷가지들의 간격을 넓혀두고, 마트에서 사 온 갑 티슈를 다용도실에 옮겨두고, 장바구니를 접어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거실 테이블 위에 하나, 화장실 선반 위에 하나. 따로따로 놓여있는 영수증을 한데 모아 영수증 보관 통에 넣었다. 안방에 걸려있는, 방금 사용한 수건을 세탁기에 넣고, 아침식사꺼리를 설거지 했다. 엄마가 다녀간 흔적을 한바탕 정리하고 나니 몇십 분이 훌쩍 지나갔다.


엄마는 식사도 일도 다른 행동도 무척 빠르다. 그 대신 뭐든 해결하기 급급한 사람처럼 어수선하다.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았지만, 엄마를 보내고 홀로 맞이하는 이 시간도 참 좋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 조금 외롭지만,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


예전엔 어떻게 같이 살았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엄마와 나는 다르다. 엄마 뱃속에서 내가 나온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나의 다른 모습은 아빠를 닮은 거겠지. 이렇게 다른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한평생 어찌 같이 사셨는지 이해되지 않지만, 세상을 다 알고 이해하려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러려니 바라보는 수밖에.


수년 전, 직장생활을 할 때엔 늘 불평불만이 가득했다. 현명하고 효율적인 업무 처리나 분배를 하지 못하는 직장 상사에 대한 못마땅함, 시간 내에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에 대한 짜증, 더 잘하고 싶은 욕심, 퇴근이 늦어져서 불만, 그야말로 화가 가득 차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라도 살짝 건드리면 쌓여있던 뾰족함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가 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화가 많이 줄었다. 짜증이 줄어든 대신, 업무 시간이 늘어났다. 업무 과부하로 몇 번의 번아웃이 찾아왔고,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지만, 확실히 화는 줄어들었다. 나는 함께 하는 게 굉장히 서툰 사람이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자식의 철없는 모습을 보며 한숨짓거나 웃픔을 보이는 어머니들이 패널로 등장하는, SBS의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를 더 이상 보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음을 철없음’으로 연결시켜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상황이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같은 시간에 방영하는, 연예인 아빠의 서툰 육아 생활을 선보이는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했거나 안 했거나, 혼자 살거나 같이 살거나. 그런 건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거지, 누가 더 잘했고, 못났다는 잣대로 구분 지을 수 있는 게 아닌데.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무의미하게 소비하는 행위에 흥미가 사라졌다.


Photo by JW on Unsplash


대신 티빙으로 좋아하는 드라마를 틀어놓고 다음날 먹을 음식을 만든다. 식재료를 씻고, 썰고, 볶거나 끓이고, 식으면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는 일상적 행위로 나의 마음을 채운다. 먹거리로 가득 차있는 냉장고를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온다.


거대한 보호막 같던 엄마의 빈틈을 알게 되면서, 나도 조금 성장했다. 엄마의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울 수 있으니 우리는 조화롭게 살 수 있다. 타인과 다름을 인정하고 나니 매사에 뾰족한 내가 보인다. 가족과도 이렇게 힘든데 남과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함께도 좋지만, 혼자도 좋다. 책임져야 할 가정이 없는, 애 없는 사람은 철이 없다지만, 철없이 살기 위해 지금껏 혼자 사는 건 아니다. 이러다 영영 관계 맺는 법을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혼자 보내는 쓸쓸함보다 함께 하는 버거움이 더 크다.


관계에 서툴고 혼자가 편한 나인데, 그동안 억지로 함께하면서 짜증과 화로 가득 차 있었나 보다. 살아가면서 시간이 쌓이면서 내 삶의 모습을 비로소 들여다보게 되었고, 진짜 나를 알아가고 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다움을 가득 채우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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