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세상 읽기

굿바이, 마음의 소리

힘 빼는 법을 알게 되다.

by 아무

오랜 추억이 깃든 웹툰, ‘마음의 소리’가 끝났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14년 장수 만화, 1229화 마지막 편을 보게 되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웹툰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던 때에도 가끔씩 보곤 했지만, 2016년 우연히 웹툰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매일 밤 함께해온 '마음의 소리'. 1화부터 순서대로 2~3편씩 정주행 하면서 월요일 밤과 화요일 새벽 사이에는 새로 나온 화를 함께 봤다. '마음의 소리'는 쓸쓸하고 외로운 밤을 함께해준 나의 소중한 밤 친구다.


'마음의 소리'는 오래된 웹툰인 만큼 댓글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읽기 시작해서 이제 군대 가는 전날 밤이라 휴가 나와서 다시 보겠다.'는 글, 몇 년 지난 옛날 웹툰을 다시 보기로 보는 사람들의 '아직도 이거 보는 사람?'같은 댓글도 있다. 일상적인 소재를 재미있게 다룬 일상툰인 줄 알았는데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냉철한 시선도 담겨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엔 웹드라마로 리메이크되어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다. TV 만화로도 제작될 만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던 웹툰이었다.


'마음의 소리'가 연재되는 매주 화요일을 기다렸지만, 작년 이맘때부터는 더욱 재미있거나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매일 마시는 '물' 같았다. 나는 '마음의 소리'의 열렬한 팬이니까, '마음의 소리'는 영원할 거니까. 변하지 않는 건 없으니까 대수롭지 않았다. 마지막 회에서 작가는 최근 1년 동안 마지막을 향해 달려왔다고 했다. ‘다 그렸다는 마음’이 들 때까지 후회 없는 끝을 준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노력을 배로 담아 무거워진 느낌, 더욱 최선을 다해 애쓰는 마음. 그 힘겨움을 알고 있다. 그건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역시, 잘할 줄 알았어.’

‘00 이가 하는 건 믿을 만 해.’


주변 사람들은 내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칭찬이 먼저였는지,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나의 행동이 먼저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인정받는 것은 내게 상당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가 중요했다. 칭찬받기 위해 노력했고, 칭찬은 나의 노력에 대한 대가였으니 당연했고, 점점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다. 누구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진정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스스로를 달달 볶았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 또는 연인, 직장 상사나 선후배일 때도 있었다.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선생님께 칭찬받기 위해 과제나 공부를 열심히 했고, 직장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눈치를 봤다. 교과서에 나올법한 정답 같은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를 옥죄며 의무와 책임을 강요했다. 하지만 욕심낸다고 마음대로 되진 않았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최선을 다할수록 내가 원하는 것들은 내게서 멀어져 갔다. 사람의 마음이 노력한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친구들은 나를 부담스러워했고, 과제에 적당한 에너지를 투자해도 선생님께 칭찬받거나 좋은 성적을 받는 동기들을 보면서 속이 상했다. 좋은 친구를 만들고 싶어 착한 척, 잘해주려고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좋은 친구가 생기진 않았다. 끈기보다 감각이 필요했던 전공 성적은 멀어져 갔고, 쉬는 시간 없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융통성 없이 일만 한다고 동료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더욱 열심히 매달릴수록 내가 원하는 것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지만, 정작 진짜 이유는 알지 못했다.



‘너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지 마, 그 정도면 충분해.’


절친한 친구들은 나를 칭찬하기보다는 그만하라고 했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다른 이가 건네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고, 겉치레처럼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만둔다고 해결되는 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욱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내게 주어진 임무라면 뭐든 최선을 다했고, 결국 치열하게 싸우느라 지칠 만큼 지쳐버렸다. 겨울이 되면 두세 달 정도 감기몸살에서 벗어나지 못해 컨디션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작년에는 역류성 인후염으로 넉 달 정도 고생한 적이 있고,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신경정신과에 다녀온 적도 있다. 내가 나를 채찍질할수록 나의 컨디션과 몸 상태는 점점 더 망가져갔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행위가 줄어들었다. 다들 서로 다른 상황과 문제들로 멈춰버렸고, 나만 겪는 힘겨움이 아니라는 생각 덕분인지 인정받기 위한 욕심도 줄어들었다.


어제는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다가 갑자기 바닥 타일에 낀 물때가 눈에 들어왔고, 문득 청소하고 싶어 졌다. 베란다 청소를 마친 후, 땀에 젖은 몸을 씻기 위해 샤워를 하다가 화장실 물때를 닦았다. 청소와 샤워를 마친 후 입고 있던 옷을 세탁기에 넣다가 틈 사이로 보이는 거뭇한 곰팡이가 보였고, 세탁기 청소까지 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은 성능 좋은 세정제 하나를 구입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주말마다 청소를 한다. 아니, 일, 일, 일로 가득 차 있던 내 삶에 조금씩 다른 것들이 채워지고 있다. 밖으로 향하던 관심이 집 안으로 방향을 틀었다. 침대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닦는 등 일상적 행동이 위안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몰입하는 시간이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내가 사는 공간을 정리하는 일, 내가 나를 챙기는 마음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채워야 하는 것이었다.


청소가 좋은 건지, 땀 흘리는 행위가 좋은 건지, 돈이 아닌 다른 것에 몰입하는 행위가 좋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현실 도피의 새로운 수단을 찾아낸 건지, 이게 맞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완벽하고 깨끗하게 청소를 마무리한 것도 아니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가끔씩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그냥 둘 때도 있고, 음식물 쓰레기를 제때에 버리지 않아 벌레가 꼬일 때도 있다. 여전히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라면도 끓인다. 하지만 예전만큼 인정받지 못함, 실패나 실수가 힘겹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왜 내 맘을 몰라줄까?’

‘더 이상 뭘 어떻게 더 해야 하는 거지?’


언제나 열심히 살아왔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힘겨웠다. 엉켜버린 매듭을 풀 수 없어 답답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마음의 소리' 마지막 회를 보면서 작가의 애쓰는 마음과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작가가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힘을 빼고 적당히 즐겼더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마음의 소리'를 만날 수 있었을까?


적당한 긴장감

적당한 밀당

적당한 관심과 노력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오면서 겨우 알아낸 것은 '적당함'이다. 연애도 공부도 인간관계도 일도 더욱 노력하고 준비하는 일이 부질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나 자신이었다. 일이 중심이 되어 사고할 때엔 피해의식이 커진다. 먹고사는 일을 하느라 고단한 나를 다독이며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어른이 됨을 그저 받아들이고, 그저 살아갈 뿐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속상해진다. 하지만 내가 중심이 되면 달라진다.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해 일을 한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 수단이 달라진다. 고난이 고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원해서 하는 일이기에 몰입도나 만족도도 달라진다. 나는 깨끗해지고 싶어 청소했고, 힘들지만 힘들지 않았다.


힘 빼는 법을 찾았다.


Photo by Austin Neill on Unsplash



'마음의 소리'는 일주일 후 어깨 힘을 훅 빼고, 전성기적 적당한 재미와 가벼움이 담겨 있는 후기로 한 번 더 만날 수 있었다. 작가를 향한 걱정은 기우였다. 무게를 내려놓은 적당한 재미를 담은 진짜 마지막 후기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조만간 재미있는 새작품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행을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