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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커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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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Sep 22. 2020

오늘의 커피

아마추어 작업실에서 로스팅한 케냐

어제 오랜만에 방문한 좋아하는 커피숍에서 가배를 마셨다. 고종의 어록 ‘나는 커피의 쓴 맛이 달다.’는 말을 연상하여 만든 커피라는 홍보 문구로 아마추어 작업실에서 케냐 원두를 로스팅한 커피, 가배. 정말로 고종이 케냐를 마셨는진 알 수 없지만, ‘쓴 맛이 달다.’라는 고종의 말이 무슨 의민지 알 것 같은 맛과 향을 가진 커피이다. 시큼한 원두가 끌리는 요즘의 나를 만족시키는 괜찮은 커피였다.


내가 알고 있는 케냐 aa는 시큼하고 맑은 수색의 가볍고 순한 느낌의 커피이다. 가장 처음 접한 커피이기도 하고. 어제 마신 케냐는 달랐다. 같은 원두일지라도 따듯할 때와 차가울 때 맛에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기억하고 있던 그 케냐가 아닌 것 같은 중간 정도의 무거움과 중간 정도의 산미, 적당히 고소한 것이 썩 괜찮아 한번 더 맛볼 수 있도록 1회용으로 포장된 드립 원두를 사 와 오늘도 마시는 중이다. 전문가가 만들어준 어제의 그것과 다소 차이가 나긴 하지만, 기억 속 케냐와 사뭇 다른 이 맛이 마음에 든다. 내 기억 속에서 케냐가 왜곡된 건지, 아마추어 작업실의 로스팅 솜씨가 괜찮은 건지, 나의 입맛이 변한 건지.


요즘은 예전에 쓴 글을 다시 보며 고쳐쓰기를 하는 중이다. 문맥을 다듬고, 흐름을 조절하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글을 싸질렀는지(!) 다시금 느끼고 있다. 생각하는 대로 끄적인다고 그게 전부 글이 되는 건 아닌데 난 여전히 생각을 기록하는 수준의 글쓴이에 머물러있나 보다. 얼마나 더 퇴고해야 괜찮은 글을 남길 수 있으려나. 끝도 없고 자신도 없다. 좋은 글로 다듬기라는 무거운 숙제를 짊어지니 일상적인 쓰기도 쉽지 않다.


뭐든 핑계다. 맛 좋은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또 읽고 쓰고 고치고, 나의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일정한 시기에 입금되는 적당량의 월급이 삶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새삼 느끼는 요즘, 본업과 취미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시기, 중심잡기에 집중해야겠다.

 중심이 어딘지도   없지만, 뭐든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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