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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커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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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un 22. 2021

오늘의 커피

어제 지인과 통화 중에 매사에 적당히 몸 사리는 지금 나에게서 뜻밖의 여유가 느껴졌다. 무미건조한 지금 이 시기가 지루하고 답답해서 화가 날 지경이었는데, 쫓길 일도 없고 서두르지 않아도 상관없는 상대적 여유를 깨달았다.


급할 것 없는 요즘

감사하면서도 조바심이 든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괜찮은 건지


요즘은 더치커피에 빠져있다. 맛 좋은 더치를 발견한 후부터 간편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다가 오랜만에 원두를 꺼내 새 원두 한 숟갈과 오래된 원두 반 숟갈을 섞었다. 새로 사 온 원두는 얼그레이 같은 부드러운 -다소 밋밋한- 풍미가, 예전 원두엔 묵직한 탄맛이 있어서 섞어도 좋을 것 같았고, 결과는 생각보다 괜찮다. 둘의 단점을 잘 보완하는 맛의 커피가 되었다.


매사에 감사보단 불평불만이 많은 나인데, 어제는 뾰족한 가시로 감정 소모를 키워  자신에게   상처를 내는 내가 보였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불안해하고 조바심을 느끼고 있는 걸까. 끝없는 자기반성만이 나를 지키는 힘이 되는 걸까. 성찰의 시간 따위  마음 편한 사람도 과연 있을까.


새 원두를 사 온 날도 그랬다. 쉬는 날 일부러 찾아가서 사온 건데 밋밋한 향에 짜증이 나서 한동안 구석에 밀쳐두고 관심 갖지 않다가 오늘 문득 꺼내어 묶은 원두와 섞은 게 신의 한 수였다.


오늘의 커피는 좋았다.

한 잔의 커피 덕분에 오늘 하루도 괜찮을 예정이다. 오늘 하루만은 날카로운 가시를 조금 숨기고, 나 자신과 타인을 향해 일부러 긁어내며 상처 내진 않을 것이다.

내일도 괜찮을까? 내일까지 욕심내는 건 무리일까?


커피 한 잔에 오늘 하루를 점쳐도 괜찮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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