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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Nov 09. 2017

[읽다] 옵션 B

[완독 106] 옵션 B. 셰릴 샌드버그, 애덤 그랜트. 와이즈베리.

회복탄력성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올 때, 외부의 지지를 받을 때 생겨난다. 자기 삶에 주어진 혜택에 감사하고, 최악의 상황에 달려들 때 생겨난다. 스스로 슬픔을 처리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슬픔을 그대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45)

‘나는 자기 계발서이다.’
라고 드러내고 있는 책을 즐기지 않는다. 요즘의 나는 대놓고 드러나있는 것보다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살짝 가려져있어 신비스러운 것을 ‘내가’ 찾아내어 숨은 의미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더 좋다. 약간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즐기나 보다.

옵션B는 끌리지 않았다. 내가 끌리지 않는 -대놓고 드러내는- 책은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래서 아마도 이 책도 곧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존중하자. 슬프고 화가 나는 것은 정상이다.’ (38)

옵션B가 끌리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게 ‘자기계발서’여서라기보다는 내 현재 상황에 맞물려 거부하고 싶은 현실을 책을 읽으면서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헤어짐, 이별, 견디기, 회복탄력성. 모두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거부하고 싶은 것들. 그런 감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감성 기복이 크고 흐름을 놓치면 오랫동안 흔들리는 나는 ‘유난스럽다’ 싶을 정도로 회복이 더디다. 그래서 이 책에 더 빠져들기 싫었고 읽기가 싫었다. 길쭉한 책 모양도 미웠고.

남의 아픔은 쉽다. 내 일이 아니니까 해결도 그럴듯하고, 이해도 된다. 하지만 그게 내 일이 되면.. 머리로는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어렵다. 마음의 문제는 이성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글쓰기는 자기연민을 배울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86)

요즘은 쏟아내기식의 글쓰기를 한다. 그렇게 끝도 없이 펜이나 자판에 쏟아붓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요즘의 나를 보둠 아주는 건 가족이나 친구, 읽기보다 ‘쓰기’이다. 누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기보다는 내 안에 곪아있던 감정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느낌으로 쓰기를 한다. 맞춤법이나 문맥상 이상한 부분 정도만 수정을 하고 다시 읽어보지는 않는다. ‘해소용 글쓰기’가 주는 후련함이 제법 만족스럽다.

상대방이 내게 더욱 마음을 열기를 바란다면 나도 상대방에게 더욱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솔직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잘 지내지 못해요. 하지만 당신에게 솔직히 말할 수 있어서 좋아요.” 또한 아주 작은 행동일지라도 드러내고 표현하면, 내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좀 더 힘을 주어 포옹하며 인사를 건네면 상대방은 내 기분이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59)

일주일 전 할머니께서 쓰러지셨다. 슬프고 화나고 힘들고 억울하고 아쉽고 온갖 힘든 감정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읽었다. 책에 미친 사람처럼 할머니의 면회시간을 기다리며 책을 읽었다. 내가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피신처인 듯 책을 읽었지만 마음이 정리되진 않았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고 해서 슬픔이 극복되진 않는다. 조금씩 마음 정리를 하고 마음으로 이별을 받아들인 후 조금 안정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친 듯이 글쓰기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듣진 못할 것이다. 내게 걸어와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조금씩 할머니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옵션B는 할머니와 이별하는 준비를 도와주고 있다.

모래사장에 한 사람의 발자국만 찍힌 것은 내 삶이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져 있는 내내 친구들이나를 안고 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 내가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보았던 것은 친구들이 내가 쓰러지면 부축할 준비를 하고 내 뒤에 바짝 붙어 걸었기 때문이다. (80)

슬프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좋은 죽음이란 없다. 나는 여전히 힘들고 슬프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하지만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부모님도 계시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 전체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 조금만 방심하면 모두 쓰러질 것 같은 분위기이다.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죄책감을 떨쳐내고 즐거움을 좇아도 괜찮다고 인정하는 것은 영속성에 대한 승리다. 즐겁게 생활하려는 것처럼, 삶을 즐기는 문제에서도 자신에게 관대해야 한다. 비극은 마음의 문을 부수고 들어와 우리를 포로로 솸는다. 비극을 피하려면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역경에 직면하더라도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도둑맞은 것을 스스로 되돌리려는 행동이다. 유투의 리드싱어인 보노가 말했듯, “즐거움은 궁극적인 반항 행위다.” (137)

내일은 나를 위해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커피숍에서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을 마셔야겠다. 그리고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다.

사람들은 실패한 행동을 해서 후회한 것이 아니라 행동하기를 실패해서 후회했다. 심리학자들이 발견한 대로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잡은 기회가 아니라 놓친 기회를 아쉬워한다. 내가 자랄 때 어머니가 자주 말해주었듯이 “우리는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한다.”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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