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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꽃신내꽃신 Jan 13. 2022

전원생활 허허실실

열심히 일한 당신의 잔디여, 풀이여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어느 카드회사의 광고 문구가 유행한 적 있다. 벌써 20년 전이다. 이후로 온갖 상황에 따라붙으며 '떠나라' 열풍을 일으켰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는 곳이 상여금 듬뿍 받아서 가는 여행지라면 오죽이나 좋을까. 그러나 '집으로'인 경우도 허다했다. 극과 극의 대비상황에 얼마나 많은 직장인이 웃거나 울었을지. 요즘엔 '열심히 일한 당신, 일찌감치 집으로 가라'로 더 심각해졌다. 앞날을 한참이나 내다본 명구랄밖에.

  

 잔디마당이 꽃 피는 시절




   열심히 일한 당신이 돌아온 집. 나의 전원생활도 시작됐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길들여진 아파트 생활은 시골살이를 선뜻 허락하지 않았다. 도심에 산다 하여 딱히 잘 산다 할 근거는 물론 없다. 편리함과 익숙함이란 건 그리 쉽게 물리칠 수 있는 게 아니잖은가. 도시와 시골의 여러 대비되는 일상을 떠올릴 때마다 당신의 완고한 결정은 야속하기만 했다. '~카더라' 통신의 '은퇴 이후 남편들의 로망인 전원생활 vs 아파트의 편리함을 버리지 못하는 아내들' 신경전. 내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의견 절충이 안 되면 시골집과 도시집으로 나뉘어 별거에 들어간다느니, 이혼까지도 불사한다느니(입장이 바뀐 경우는 차치하고). 

         




   어쩌랴. 매달 당신의 생활비 받아 쓰는 한달살이 처지. 무슨 수로 버틸 수가 있는가. 완패! 이삿짐 모조리 싸들고 따라나서는 수밖에는. 집이 완공되기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다. 머리 아픈 일들이 수시로 생겨났으나 이렇게 떼고 저렇게 붙이길 반복했다.  2018년 초여름부터 전원살이가 시작됐다. 남편들이 꿈꾸는 전원생활이란?




   공기 맑은 아담한 창으로 아침해를 맞는다. 푸릇푸릇 잘 가꿔진 잔디를 밟으며 마당을 산책한다. 텃밭에 나가 싱싱한 상추와 고추를 따서 된장에 찍어먹는다. 뭐 이런 소소한 일상일까. 좀 더 여유롭게는, 원두막(손수 짓든 아니든)에서 차를 마시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음미하는 일상까지. 은퇴기까지 몇십 년을 일과 사람에 지쳤을 테다. 누군들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겠는가만.... 집을 짓는 동안 전원주택지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텃밭은 집의 크기에 상관없이 필수 요소였다. 거기에 잔디마당까지 갖추면 금상첨화!  

  




   아파트에 버금가는 시설로 남향의 주택을 짓는다. 상록수로 울타리 친 뜰엔 복슬강아지가 뛰논다. 정원엔 온갖 꽃이 때맞춰 피고 진다. 텃밭엔 양껏 뽑아먹을 유기농 채소와 야채가 쑥쑥 커간다. 햇살 환한 주말엔 좋은 사람들을 불러 삼겹살 파티를 연다. 저녁답엔 서산을 바라보며 부모님 생각에 젖어든다. 어둠을 뚫으며 비나 눈이 퍼붓는 날엔 창과 마당을 헤집는 음률에 잠을 설친다. "할부지~ 할무니이~~" 외치는 깜찍이 손주들이 주말마다 품에 안겨든다. 오색 놀을 바라보며 늙은 아내의 어깨를 토닥인다.... 남편들이 꿈꾸는 전원생활의 이상적인 모습일까.




    '이상적'이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나와 있다. 낭만적, 환상적, 공상적, 비현실적이라는 말과 이웃이다. 반대급부인 현실은 어떠했는가. 휴일마다 먼 길을 오가며 인부들의 간식을 챙겨주고 건축 상황을 살폈다. 그럼에도 장마가 지면 어김없이 집안의 어느 틈에선가 빗물이 새 나왔다. 텃밭의 나날은 '돌밭을 일궈 한 뼘 한 뼘 옥토를 만드는 일'이었다. 연장이 닿는 곳곳에서 온갖 돌이 쨍그랑 쨍그랑 우렁차게도 부딪쳤으니. 상록수와 과실나무는 각각의 성격에 알맞게 머리를 깎고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예쁨을 유지하고 열매도 실하다. 텃밭의 채소나 야채는 소홀히 하면 잡초나 다름없어진다. 직접 가꾼다고 해서 더 많이 먹지도 않는다. 식성이 갑자기 달라지겠는가. 버리지 않으려면 제때제때 거둬서 지인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말리거나 삶아서 저장해 두는 수고로움도 견뎌야 한다. 전원살이에까지 따라다니는 엔트로피 법칙이라니! 가장 큰 과제는 잔디다. 잔다르크와 한집안 성씨인지는 알 길이 없다만. 그대, 잔디라는 어여쁜 이름의 그대는 대체 누규? 



   잔디는 양면적이다. 인간의 대결이라면 야, 너 정말 이중적이구나! 소리치고픈 두 얼굴의 사나이, 두 얼굴의 그녀, 두 얼굴의 백세주, 두 얼굴의 파랑, 두 얼굴의 백신, 두 얼굴의 내일.... 봄부터 가을까지 푸른 마당은 식구와 방문객들을 위한 신선한 선물. 당신에게는 고단함을 이겨낸 결실. 당신은 출근하는 순간에도 퇴근하는 순간에도, 그 이후의 어떠한 날에도 잡풀을 가만 두지 못했다. 특히 잔디와 형제처럼 닮은 삘기(띠풀)는  뿌리를 넓혀가므로 놔둘 수 없다 했다. 나는 잔디와 삘기를 함께 뽑아버리는 왕성한 눈을 가졌다. 풀 뽑는 일에서 제외됐다. 풀씨의 힘은 당신에게 습관의 힘을 길러줬다. 풀씨의 힘은 습관의 힘을 이겼다. 1년 후 당신은 왼쪽 무릎 연골이 갈기갈기 찢어져 수술을 했다. 한 달여 간병기 이후 나는 선언했다. 습관의 힘이 풀씨의 힘을 못 이겨 이런 사태가 또 벌어진다면! 두 번의 간병인 노릇은 없을 거라고. 




   아니나 다를까. 통증을 못 이겨 진료를 받으니 수술 자리 옆의 연골이 찢어졌단다. 설마 나의 선언이 무서워서는 아니겠지. 이번엔 연골재생주사를 매주 맞으며 치료했다. 다행히 모든 풀씨와 잔디씨가 동면 중. 만인의 부러움을 사며 5백 평의 널따란 대지에서 10년 넘게 산 지인이 있다. 잔디마당과 텃밭의 풀에 두 손 두 발 들었다 한다. 얼마 전에 전원주택을 팔아치우고 아파트로 이사했다. 




    "잔디마당이요? 허허허. 한 3년만 살아보이소. 돌로 싹 다 덮어뿌고 싶을 낌미더." 

 3년이 지난 우리 집의 '~카더라' 통신은 미래 진행형이다. 





   새봄이 오고 잔디싹이 서서히 오르면 풀과의 투쟁이 또 시작되겠다. 삘기 방제를 위한 농약도 어쩔 수 없이 두어 번 치겠다. 잔디가 무성해지면 잔디깎이의 시끄러운 기계음도 두세 번 들어야 한다. 눈에 보이기만 하면 망설임없이 허리를 굽히는 당신의 습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바퀴 달린 엉덩이의자와 엉덩이에 붙여 다니는 둥근의자에는 변함없이 햇발만 앉았다 가겠다. 풀도 뽑지 않으면서 나는 허탈한 잔소리를 가끔씩 털어놓겠지. 아직도 잔디가 이 집의 주인이구랴! 풀씨의 힘과 습관의 힘 사이. 푸른 잔디마당엔 제3의 힘이 돋아날 것인가. 언제쯤 어떤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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