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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꽃신내꽃신 Jul 20. 2022

남의 닭으로 꺼억

닭 키우며 닭 먹기

   



   지난 주말의 초복을 시작으로 완전한 무더위에 들었다. 초복, 중복, 말복을 이르는 복날의 복(伏)은 사람이 개처럼 엎드린 모양을 본뜬 글자. 온몸에 털을 둘러쓰고 헥헥거리는 한여름 개의 늘어진 몸 같다는. 에어컨, 냉장고뿐 아니라 아이스크림, 냉면, 냉커피 등 냉(冷)이라는 이름의 숱한 무더위 대항마가 있음에도 이맘때의 사람들은 지친다. 팔자 좋은 애견들은 에어컨 아래서 사람 집사에게 봉양까지 받으니 진정한 상팔자. 옆집, 뒷집, 앞집 건너 옆집에서도, 그 건너집에서도 묶여 지내는 시골마당 경비견들이야 어디 그런! 개팔자가 상팔자인 시절을 타고났어야 말이지. 어쨌거나 사람은 조부가 엄청난 갑부인 집안에, 강아지는 자신을 귀한 아들딸로 대접해주는 집안에 나야 바람직할지니.  


올여름 날씨처럼 올장마도 변덕쟁이. 초복 이튿날은 종일 비의 날.  



    며칠 전, 어여쁜 지인에게서 생닭 두 마리(가시오가피 가지도 덤으로)를 선물 받았다. 당장 해먹을 사정이 아니어서 냉동실 행. 먹을거리도 단백질도 넘쳐서 탈인 시대. 그래도 복날을 그냥 넘기면 어쩐지 섭섭하다. 식당의 에어컨 아래서 뚝배기 영계 한 마리 후르릅하고 꺼억, 한 번하면 만사가 배부를 터. 그럼에도 수고롭게 장작불을 붙인다. 전원생활의 한 묘미를 지나칠 순 없으니. 뙤약볕에 대항하지 않아도 되는, 해진 후가 최적의 시간이다. 냉동닭을 물에 담가 두고는 텃밭의 오이와 부추, 청양고추와 아삭이고추와 깻잎, 토마토와 복숭아를 땄다. 텃밭에 풀약을 치고 정자에서 느긋한 남성 1, 침대에서 휴일을 즐기는 남성 2를 불러냈다.


어여쁜 이가 선물한 생닭이 화덕 위 스테인리스솥에서 익어간다.



   두 남성이 합세해 이동식 화덕을 꺼낸다. 무쇠솥이 아닌 스테인리스 가마솥을 헹궈서 그 위에 얹는다. 백숙은 무쇠솥에서 끓여야 제맛인데 늘 아쉽다. 상상했던 것과 달리 두세 번 써보니 감당이 불감당이었다. 무거워서 운반도 힘들거니와 녹 방지를 위해 매번 들기름칠을 해야 하니. 무쇠솥의 묘미는 스테인리스솥으로 그만 교환되고 말았다. 대신, 화덕 위에 무쇠솥뚜껑은 가끔 오른다. 고기를 구우면 풍미를 더해주어 때마다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준다. 무쇠솥은 아니지만 일단은, 물과 가시오가피 가지를 넣어 푸욱 끓인다. 이단은, 손질한 닭을 넣어 푸욱 푸우욱. 참숯 장작불에 열받은 솥단지의 김 무리가 동네방네 백숙 소문을 낸다. 두 마리밖에 없는데 누가 오시면 어쩌나. 나눠먹으면 되지. 이 고소함을 저녁 바람이 숲으로 데려갔나. 아무도 안 오시네. 우리의 저녁식사 준비가 늦어서인 모양이다. 이웃 어른들은 초저녁 식사 후 일찌감치 대자리에 누우셨겠다. 농경시대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습관은 여전히 시골마을의 핏줄을 타고 돈다.  


초복날에 여고 동기들 40여 명이 모였다. 진주에서 가까운 시골의 농원에서 신나는 1박. 맷돌 체험을 하고 각자 받아간 비지로 동그랑땡 만들기 릴레이도 하고.



   한 시간을 끓이니 닭껍질이 흐물흐물하다. 불린 찹쌀 한 줌을 면 주머니에 넣어 반시간을 더 끓인다. 마당에 어둑서니가 찾아들고 온 동네가 깜깜하다. 닭과 찹쌀이 익어가는 동안 야채를 씻고 부추를 무치고 특식 하나를 더 준비한다. 진주여고 56회 졸업생 야유회 선물로 받아온 두부와 비지. 우리의 아나바다 장터에서 멀티 잔치팬을 산 인숙이가, 동그랑땡을 이쁘게 구워 단톡방에 자랑한 때문이다. 경아가 레시피를 묻고, 곧이어 정자가 따라 만든 사진을 올리고, 옥순도 봉애도 남이도 뒤를 잇고…. 농원에서 맷돌에 갈아 만든 비지로 나도 도전장을! 동그랑땡은 아무나 만드나. 둘째와 합세했지만 반죽 비율이 안 맞다. 7할은 굽는 동안 부서지고 3할은 겨우 겨우 모양새를 갖췄다. 채소가 부족해 돼지고기 비지찌개를 만들었다는 경아를 따라할 걸.          

  

초봄부터 정원 가장자리를 푸르고 붉게 물들여온 장수매. 노란 열매와 꽃물 든 노란 열매를, 친구들 얼굴같이 동그랑땡같이 많이도 달았다.   



   시골의 여름밤은 벌레들과의 전쟁이다. 정자에서 먹는 재미를 누리려면 모기장이 필수. 군데군데 모기향도 피워야 한다. 이사든 해에 산 대형 모기장으로 실내가 단번에 생겨났다. 바깥에선 온갖 벌레가 모기장을 뚫으려고 몸부림을 한다. 모기장 천장은 곧 벌레 천국. 낮보다 기온이 내리고 바람도 살랑거렸지만 더운 음식 앞에서 모두가 땀을 뻘뻘. 백숙과 닭죽과 울산 막걸리 태화루와, 고소한 두부와 동그랑땡의 힘나는 영양소가 조화롭다. 우리는 닭고기를 얌냠거리고, 낮은 담장 너머엔 횃대 위의 닭들이 닭고기 냄새에 취해 졸고. 요지경이 따로 없는 복날이다.    


청포도 익어가는 시골의 여름밤이 깊어가고, 정자에서는 사람들이 닭을 먹고, 정자 너머 닭장에서는 잠든 닭들이 푹 고은 닭 냄새에 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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