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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꽃신내꽃신 Sep 01. 2022

봉숭아가 666

오늘일까 내일일까 팡팡팡

 


 

  연일 열대야에 뒤척인 여름사람의 시간도 그들에겐 꽃날. 풀벌레 가락 높아지는 노을의 시간에도, 자정 지나 쏟아지는 깊은 비에도 꽃날. 8월 끝날에도 9월 첫날에도 꽃을 지우고 피우며 씨앗 그득한 방을 방방방 매다는 꽃날. 담벼락에 나른히 기대어. 돌과 돌을 비집고. 백일홍과 과꽃을 배경으로. 우물가에선 물 긷는 소녀같이 새초롬히. 텃밭 돌계단과 창고 벽 사이를 빼곡히. 살구나무의 노란 기억 근처에 아스라이. 닭장 곁에선 닭똥냄새에 종일 취해서. 할머니를 걷어차서 우시장으로 간 옆집 소의 바삭한 똥 곁에 다소곳이. 졸졸 개울가와 벼 익는 논두렁에 찰랑찰랑. 골목 입구 반사경엔 입체파 그림으로 흐느적. 14번 국도 입구 언덕배기에도 봉숭아, 봉선화, 봉선의 이름들이 가을로 떠나는 땡볕과 빗방울을 흔든다. 선선한 밤기온에 수국이 변색한다. 러·우 전쟁으로 수소 가격까지 급등한다. 에어컨과 선풍기의 커버는 어디에 들었나. 내일일까 모레일까, 빽빽이 장전된 총탄 씨앗 666의 발사 시점.  저 색색 핑크 시절의 팡팡팡. 과꽃과 백일홍의 핑크가 조마조마, 서둘러 고개를 숙인다.



한여름 47일간 알을 품은 알크메네. 병아리 둘씩을 14일 간격으로 품어냈다.  


 

   봉선아     


   666이 매달려 있네 666이 휘어지고 있네 봉숭아꽃밭이 용서하는 자세로 부풀고 있네

   어제의 얼굴이 아련해지고 뒤틀린 어깨가 마구 가려워지고 연분홍 얼굴이 돋아나고     


   달무리가 건넨 한 송이 이별이 흩어지고 있네 빗발이 꽃밭을 세차게 흔들어대고 있네 꼿꼿한 줄기가 구부러지더라도 매달려 피는 자세로 매달려 피는 자세에서 어젯밤 눈물이 씻겨나가는 자세로

     

   꽃대에 기대어 기다려온 마음이 발갛게 숨 쉬는 꽃밭이 부풀고 있네 달의 발자국이 여기를 떠나 산딸꽃에게 가더라도 봉선아 너의 이름으로 봉선은 봉선

     

   하나의 꽃대만 올리고 어긋난 이파리가 더위에 가까워져 있네 달이 저벅저벅 돌아오고 있네 꿋꿋하던 이별이 솟구치고 뒤틀린 어깨를 나란히 붙이려 하네


   봉숭아꽃밭이 용서하는 자세로 부풀고 있네 봉숭아꽃밭이 용서하는 자세를 팡팡 터뜨리려 하네



봉선 씨방엔 씨앗이 10여 알쯤 들어 있다. 터지는 순간 반대방향으로 껍질이 오므라들기 때문에 모든 씨앗이 발사된다.   

                                     

   몇 년 전에 썼던 봉선 시. 그날의 기분은 저랬나 보다. 지천인 봉선을 돌아보다 봉황신선, 봉선을 불러본다. "봉선아아~" 여기저기서 봉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한다. 여고 동기 봉선이도 어디선가 바쁜 일상을 피우고 있겠지. 봉선의 한자어는 봉선화(鳳仙花). 꽃 모양이 봉황을 닮아 봉. 봉황이 노니는 곳이 신선 자리라서 선. 아무나 따라쓸 수 없는 부러운 이름이다. 햇볕만 잘 들면 어디서든 잘 자라는 생명력은 더 훌륭하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난 민족성을 닮은 꽃. 이제는 흘러간 옛 노래 같지만, 봉선화 가곡은 소녀의 동그란 손톱인 듯 이발소 그림인 듯 정겹다. 시골집의 마루에 걸려 있던 태엽 감는 괘종시계와 푸시킨(러시아 시인, 소설가)의 시구가 그려진 빛바랜 액자 같기도 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건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건 다시 그리워지나니



외출했다가 대문을 연 순간, 보고팠던 후투티 발견! 새들은 귀가 밝으니 먼발치로 볼 수밖에는.


   우리의 봉선화는 1920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 가사 때문에 금지되는 수난도 겪었다. 홍난파 작곡가가 친구인 김형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였다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이다.

   

   봉선화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1절은 또렷한데 2, 3절은 잊어버렸다. 가사를 검색하다가 옆으로 새고 만다. 일제강점기의 한반도 상황이 다시금 쓸쓸하다. 봉선화뿐 아니라 어떤 꽃인들 처량하지 않았으랴.

  

   어언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공원도 길가도 아닌 우리 집 울타리 안이 봉선으로 이렇게 수북해질 줄이야. 흰, 연분홍, 분홍, 연보라, 보라, 홍, 자주 등 색도 다채롭다. 원산지는 인도, 말레이시아, 중국이지만 언젠가부터 씨방의 폭발력으로 온 지구를 잠식한 꽃. 줄기 하나가 매단 씨방을 세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드높은 앞날을 품는 꽃.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를 살랑살랑 내어놓는 꽃. 저들처럼 예측할 수 없는 어느 날을 폭발하고픈 순간이 우리에게도 있다.  



흰 닭 두 마리는 남고 다섯 마리는 동서네로 입양되었다. 수탉에게 쪼이기도 하지만 회색 닭 다나에가 텃밭 산책 때 항시 놀아준다.   


   닭장 문을 열자 봉선 줄기를 건들며 청계들이 텃밭으로 달려간다. 6월 4일 생 중닭 두 마리는 펄펄 날아다닌다. 함께 나서 동서네로 거처를 옮긴 다섯 마리도 잘 자라고 있다. 청계 세 마리가 오른 하늘꽃밭에도 봉선이 환하려나. 사람을 위한 달걀을 위해 우리 집의 가축이 된 닭들. 암탉이 알을 낳으며 내지르는 소리를 들을 땐 어쩔 수 없이 미안해진다. 된바람 한 줄기가 스윽 가슴을 질러간다. 붉은 벼슬을 봉황인 양 으쓱대며 제왕 행세하는 장닭 제우스의 행동은 속상할 때가 많다. 수탉은 수정을 위해 암탉의 윗등에 날카로운 두 갈퀴발을 올려야 한다. 그러니 암탉은 달걀을 낳으면서부터 그곳의 털이 빠진다. 자라날 새가 없다. 제우스가 유난스럽게 미워하는 검은 닭 에우로페는 애처롭다. 툭하면 등에 올라 뒷목을 쪼아대니 피부가 더 벌겋게 드러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사람의 행동도 제 맘에 안 들면 경계태세에 돌입한다. 털을 바짝 세워서 나에게도 대들었고 둘째에게도 대들었다. 처음엔 너무 놀라 도망치다가 갈퀴발에 장딴지를 쪼일 뻔했다. 자신을 과시하고 영역을 지키고 암탉을 보호하려는 처신이란다. 겁날 때도 있지만 조심하는 게 상책.  

              


   검은 닭 알크메네가 여름 동안 세 번째 알을 품었다. 8월 5일과 6일에 한 마리씩, 2주가 지난 19일과 20일에 한 마리씩 태어났다. 엄청난 더위에도 불구하고 무려 47일간 알을 품은 것이다. 한 어미품에 드는 병아리가 형과 아우 같다. 달걀 세 개가 남았지만 어미는 더 이상 알자리에 들지 않았다. 다른 암탉이 그곳에 알을 낳으면 곤란하므로 남편이 알을 깨뜨렸다. 하나는 깨어날 수 없는 상태였고 둘은 부화 직전이었다 한다. 텃밭 가장자리에 묻었다. 닭장에 청계 3대가 아웅다웅 모여 산다. 닭은 결코 사람이 무시하는 용어인 닭대가리가 아니다. 사회적이고 계층화된 동물이다. 수탉이 여러 마리라면 서열대로 새벽 기상 소리를 지르고, 여린 것들은 쪼임을 당하고 털이 뽑힌다. 달걀을 가지러 문을 열어보면 닭털이 한 쓰레받기씩 담기는 때도 있다. 누가 누굴 건드린 걸까. 이른 아침에 전투를 벌였겠지. 장닭 제우스만의 소행인지 그들끼리의 육탄전인지 본 바는 없다. 덩치 작은 암탉과 어린 중닭을 툭하면 쪼아대는 제우스가 아무래도 유력한 범계?  



알크메네에게서 먼저 태어난 삐약이들. 잔디밭에 올려뒀더니 울고불고 난리. 뛰던 청개구리가 병아리에 놀라, 죽은 듯 풀을 붙든 모습이 기가 찼다.


   어느새 한가위가 코앞이다. 텃밭의 단감도 대추도, 석류와 배도 새파랗건만. 고추 역시 한창 빨개지는 시절. 선선해지면 깻잎이 지므로 한 소쿠리 따서 장아찌를 만들었다. 둘째가 좋아하는 고춧잎도 처음으로 무쳤다. 고춧잎이 줄기에 빼곡하건만 참 맵지 못한 엄마다. 선선한 바람에 오이는 지고 가지는 제법 열렸다. 가지는 치아가 약한 어른들이나 좋아하는 줄 알았다. 직접 따 본 이후부터 구이도 무침도 새로운 맛임을 알게 됐다. 그런데 저걸 언제 해 먹나. 냉동실에 들어가면 10년 후에 발견될지도 모르는데. 으아, 시골살이는 부지런함과 의욕이 똘똘 뭉쳐야 즐거울 수 있다! 뜨거운 간장물에 한순간 푹 저려진 깻잎인 듯 시골살이가 종종 저리다. 봉선이 터뜨리는 씨앗총탄에 펑펑 연발탄을 맞으면 아이코야, 부지런해져서 의욕이 만발하려나.



어제는 달걀이 하나. 오늘은 넷이나! 깻잎장아찌를 만들고 고춧잎을 무쳤다. 맛이 궁금해 따 본 단감은 맛도 파랗다. 토마토는 달다. 가지는 언제 요리해 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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