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틈에서도 자란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초록이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그냥 스쳐 지나갈 수가 없다. 멈춰 서서 사진을 찍게 된다. 내 핸드폰 사진첩엔 이와 비슷한 아이들이 꽤 있다.
사람들이 다니는 보도에서 꿋꿋이 자라고 있다던가, 하수구 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등 생명력이 환경을 이기는 그 장면은 언제나 뭉클하다.
월요일 오후 3시 30분
교육분석받았던 교수님께 슈퍼비전을 받으러 갔다.
(*상담 슈퍼비전 : 전문 상담자가 되고자 하는 상담자에게 좀 더 전문적이고 숙련된 슈퍼바이저가 상담 수련생의 상담 수행 능력을 올리기 위해서 제공하는 평가적이고 교육적인 모든 활동)
"이건 상담자의 성장을 위한 겁니까?"
교수님의 이 질문이 후벼 파고 들어왔다.
이 케이스는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교수님께 바로 연락을 드렸다. 이 교수님은 J(계획형) 스타일이셔서 일주일 전에 상담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연락드린 지 12일이 지나고 오늘 슈퍼비전을 받게 되었다. 보고서를 쓰면서 내담자가 한 말과 내가 한 말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시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큰 수치심을 안고 있는 시한폭탄 같았는데, 이제는 더 나은 상담을 위한 기본이라는 걸 안다. 예전보다 낫다.
어떤 말이 내담자에게 위험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돌이켜보게 된다.
상담자는 소의 위와 같은 작업을 자주 하는 편이다. 되새김질이 필수다.
예전에는 그 부분이 부담스러웠다. 이제는 잘 되새겨야 소화가 되고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양분 역할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상담 장면에서 내 감정과 내담자의 감정을 분리하지 못한다면,
이 케이스는 리퍼해야 할거 같네요."
보고서에 이 상담을 내가 잘 해내고 싶다고 적었었다. 교수님은 2020년부터 교육분석을 통해 나를 만난 분이다. 상담 쪽에 그 어떤 분보다 나를 잘 아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케이스에서 얼마나 역전이가 왔는지 너무나도 잘 아신다.
내가 뱉고 나서도 고민해서 멘트들을 딱딱 짚어내셨다.
하. 이제는 지적이 아프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게 핵심이었다.
"상담 장면에서 딱 그 순간에 내담자의 감정인지 상담자의 역전이인지 판단하고 상담자 것이면 울음을 꾹 참고 딱 넣어두세요. 그래야 상담자죠. 아니면 리퍼해야죠."
"그리고 상담자가 앞서 나가지 마세요.
내담자를 따라가야죠."
하. 내담자를 따라가라는데, 그 말이 뭔지.
화요일 아침회의 때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나도 따라가고 싶다고요.'
갑자기 한 장면이 떠올랐다.
초보운전 시절이었다. 지금도 운전을 그다지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초보를 붙이고 다닐 정도도 아니다.
2018년 11월에 운전을 시작했다. 운전면허는 2001년에 땄지만 그동안 운전을 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는 2018년이다. 만 4년이 지났고 5년 차이다. 이제는 운전하면서 풍경도 보인다. 노래를 듣고 부르기도 한다.
2018년 그때는 딱 앞차만 보고 따라갔다.
지금 내 상황이 그렇다.
딱 내담자만 보고 따라가자.
2023년 1월,
2024년 1월,
2025년 1월,
2026년 1월
이 정도가 지나면, 마음의 풍경이 보이긴 하겠지.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일이다.
교수님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나왔다.
친밀함이 올해 내 이슈이다.
2020년도에 비해서 '교수님이 편해졌구나' 싶다.
잔뜩 긴장해서 갔던 그 공간에
온몸에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편안하게 있다가 왔다.
내 할 말도 머뭇거리지 않고 하고,
지금 내 상태 그대로 표현도 하고 왔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다름을 느낀다.
나의 내담자들도 그러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 아침에 봤던 식물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라나길.
*교수님 한 말씀.
"워낙에 많은 걸 겪어서, 그 정도는 힘들지도 않다고 느끼고 있네요.
힘든 거 맞아요."
음, 안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또 숙제를 내주심.
<숙제의 내용>
- 힘든건데 안힘들어 하고 있는건가?(나에 대한 것)
- 그 부분은 진짜 안힘든데, 교수님의 감정 역전이인가?(상대에 대한 것)
하여튼 갈 때마다 숙제를 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