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결핍과 엄격한 기준이라는 삶의 덫에 걸려
I'm on a boat
눈에 보이는 사방이 바다야
갓 잡아 올린 생선을 회 쳐서 먹어
I'm on a boat
멀어지는 도시
We're going on
어딘가로 멀리멀리
I'm on a boat
내가 원했던 건 그게 전부야
흘러가는 파도와 내 흔들리는 보트
I'm on a boat
멀어지는 도시
We're going on
어딘가로 멀리멀리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잠들 수 있는 낙이 필요해
떠나지 말란 법은 없지만
두고 가야 할게 많아 겁이 나는 걸
가끔은 한심한 꿈들이 필요해
But 나를 바라보는 눈이 너무 많아
저 멀리 갈 수 있는 배가 필요해
내 삶은 파도 따라서 흘러가야 돼 (중략)
I'm on a boat
멀어지는 도시
We're going on
어딘가로 멀리멀리
지금은 꽤나 멀리 온듯해
생각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도
괜찮아 이건모두 내가 바랬던
이상의 일부야 이 정돈 감수해야지이이 예에에
큰 파도가 날 덮칠 수도 있지만
뜻밖의 사고가 날 수도 있지만
I'll be ok 난 내 삶에 만족해
날 향한 걱정과 우려는 필요 없어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여행을 가고 싶었다. '나는 왜 떠나지 못하는 걸까' 고민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돼!'라는 말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이 노래를 듣는 순간 가사 하나하나 와닿았다. 특히 두고 가야 할게 많아서 겁났던 거다. 여행 갔다 오는 빈 시간만큼 메꿔야 하는 무언가 들이.
주말 동안 아이들과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새벽에 일어나서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오후에는 함께 시간을 보냈다. 바다를 보면서, 내리는 비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되는 거였다. 지는 해를 보면서 잠드는 여유가 필요했다.
어느 순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일상을 바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큰 일(?) 날 것처럼 불안했다. 마음속에서 '애쓰지 않으면 안 돼'라는 문장들이 떠다녔다. 처음에는 다시 공부를 하게 되고 학교에 다녀서 그런 줄 알았다. 학부 3학년 편입해서 졸업 후, 석사 과정에 진학해서 그런 줄 알았다. 졸업하려면 할 일이 많으니까 바쁜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작년 겨울에 알게 되었다.
나는 바쁘게 살 때,
제대로 살고 있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 안에 숨어 있길래 이럴까? 궁금했다.
표면적 성격은 ENTJ(MBTI성격 유형)라서 그런 줄 알았다.
한 동안은 '내가 ENTJ니까 그래'
이렇게 합리화했다. 그런데 그건 행동으로 보이는 특성이었다.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도 많고 뭔가를 계속하고 있으니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 힘들었다.
처음에는 안갯속을 헤매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내 모양이 어떤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그 이후였나 보다. 나 자신이 조금은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꽤나 잘 데리고 살고 있다. 나를.
그러니까 더 궁금해졌다.
'뭐 때문에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거니?'
석사 졸업하면 여유가 생길 줄 알았더니, 사설상담센터 수련 두 곳, 대학교 상담센터 수련 한 곳, 강의 일정에, 따로 받은 상담케이스 두 건, 심학원(대안대학원) 수업에 빈 시간에는 마이카운슬러 수업까지 꽉꽉 채워 넣었다.
뭐였을까?
어렴풋이는 알았다. 나는 마음이 힘들면 몸을 힘들게 해서 버텨내는 스타일이기도 했다.
그건 나의 삶의 덫이었다.
심학원 과제도서였다.
'삶의 덫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를 열기'
처음에는 분명 나에게 현재 필요한 내용인 걸 알겠는데,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과제를 끝내고 덮어두었다가 5월의 질문(두 번째 과제)을 하면서 다시 찬찬히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텍스트 글자 그대로만 읽었고,
두 번째는 내 상황을 떠올리며 읽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왔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차이점은 마음의 여유였다. 처음에는 과제 시간에 촉박해서 마음이 급했고, 이번에는 꽤나 여유롭게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해해 보리라' 마음을 꽉 먹고 읽었다. 그러니 보였다. 내 모습이.
처음에는 채점지가 이해가 안 가더니, 다시 여유롭게 읽어보니 이해가 갔다. 각 항목마다 질문이 2개씩 해당되고, 어린 시절, 현재 점수를 매겨서 가장 높은 점수를 왼쪽 끝칸에 적는 거였다.
나 같은 경우는 의존, 정서적 결핍, 결함, 엄격한 기준이 6으로 높게 나온 편이었다.
책의 각 파트에는 각 항목별로 더 세밀한 질문지가 있다. 위 질문지는 어릴 적 상황에 대한 질문이고, 책 속 뒤에 질문지들은 현재 내 모습에 대한 질문이다.
의존, 정서적 결핍, 결함, 엄격한 기준의 질문지를 각각 다시 해보니,
나의 삶의 덫은 '엄격한 기준'과 '정서적 결핍'이었다.
먼저 일어난 건을 더 앞에 두자면, 어린 시절 '정서적 결핍'이 자극되었고,
그의 영향으로 현재는 '엄격한 기준'의 덫에서 살고 있었다.
정서적 결핍의 덫
'나는 결코 사랑받을 수 없을 거야'
'정서적 결핍의 경험'(삶의 덫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 열기, 152쪽)
정서적 결핍이란 뭔가 빠진 듯한 바로 공허한 느낌이다.
외로움이며 아무도 없는 그런 느낌, 당신이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이다.
: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많은 걸 해주셨다. 아버지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계셨고,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키우려고 노력해셨다. 화목한 가정에 속했다. 그런데 나는 공허했다. 도대체 이유가 뭔지 몰랐었다.
이제야 뚜렷해지고 있다. 내가 태어난 이후 동생 셋이 줄줄이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후 엄마는 시부모님을 모시기도 했었다. 또한 엄마는 살가운 성격이 아니셨다. 과묵한 편이며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분이었다. 나는 엄마와 정서적 교류를 원하는 만큼 충분히 하지 못한 채 자라났다.
상대가 분명히 배려하고 있음에도 불고하고 끊임없이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정서적 결핍의 덫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다.(153쪽)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랬던 거 같다. 이후 대인관계와 결혼생황에도 영향을 주었다.
정서적 결핍의 기원
1. 어머니는 차갑고 애정이 없다. 아이를 보듬어주고 붙잡아주지 않는다.
2. 아이는 자신이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느낌, 자신이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느낌이 없다.
3. 어머니는 아이에게 충분한 시간과 관심을 쏟지 않는다.
4. 어머니는 아이에게 진정으로 동조되어 있지 않다. 아이 세계로의 감정이입이 어려우며 아이와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5. 어머니가 아이를 적절하게 달래주지 못하 아이 스스로가 진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6. 부모는 아이를 적절하게 안내해 주지 못하거나 방향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아이가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다.
정서적 결핍의 세 가지 영역
1. 보살핌의 영역
2. 공감의 결핍
3. 보호의 결핍
보살핌은 따뜻함, 관심, 신체적 애정을 뜻하고, 공감은 당신의 세계를 이해하고 당신의 감정을 인정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보호는 힘과 방향, 안내를 제공한다. 어린 시절 충고가 필요할 때 달려갈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는가, 또한 피난처를 제공하고 도움과 격려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나? 당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안전하게 보살피는 누군가가 있었나?(163~165쪽)
: 내 대답은 셋 다 '아니요'였다. 친정어머니께서 나를 잘 키우고자 노력하신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물질적인 부분을 채워주셨지만, 정서적인 부분을 채워주시지 못했다. 또한 사 남매를 남편 없이(주말부부) 혼자 돌본다는 건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었다. 또한 친정엄마의 성향도 따뜻함 보다는 군인에 가까웠기에, 여러 가지가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걸 지금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크면서 가슴에 큰 구멍이 있었고, 그건 나에게 상처였다.
이러한 상처는 또 하나의 덫을 만들었다.
엄격한 기준의 덫
"절대로 충분할 수 없어"
엄격한 기준의 경험 (393쪽)
일차적인 느낌은 압박감이다. 당신은 절대 긴장을 풀고 인생을 즐길 수가 없다.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도록 재촉하고 또 재촉하고 또 재촉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면 그것이 학업이든 일이든 스포츠나 취미든 무엇이든지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중략)
엄격한 기준이라는 덫에 빠진 사람들은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해내지만, 이것은 단지 남들에게 그렇게 보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대단한 성취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그저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 과민성 대장 증상과 두통과 같은 신체적인 스트레스 장상들이 흔히 나타난다.
엄격한 기준은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을 초래한다. 자신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좌절하고 화가 나며, 만성적인 분노와 심한 불안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해내야 할, 다음번 과제에 사로잡혀 있다. 당신 불안의 초점은 시간이다. 할 일은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 항상 시간을 의식하며, 지속해서 시간의 압박을 느끼고, 인생의 잔혹함과 자신이 성취한 것의 공허함으로 인해 우울해질지도 모른다.(394쪽)
엄격한 기준의 세 가지 유형(396쪽)
1. 강박성
2. 성취지향성
3. 지위 지향성
강박성 - 자신을 실망하게 하는 주변 환경에 대해 화를 낸다.
성취지향성 - 다른 욕구를 희생한 채 높은 수준의 성취에 지나치게 가치를 둔다.
지위지향성 - 인정받기 위해 (지위, 부, 외모 등) 지나치게 중점을 두는 경향이다. (종종 경험이나 사회적 소회 같은 핵심감정을 보상하기 위한 반작용의 형태), 자책, 수치심을 느끼는 경향.
엄격한 기준의 근원(400쪽)
1. 부모의 사랑이 조건부여서, 그 기준을 만족시켰을 때에만 사랑해 줬다.
2. 부모 중 한 분 혹은 두 분 모두가 높고 불균형한 기준의 모델이었다.
3. 결함, 사회적 소외, 정서적 결핍, 실패와 같은 다른 덫을 보상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엄격한 기준이 개발되었다.
4. 당신이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부모 중 한 분 혹은 두 분 모두가 당신에게 수치심을 심어주었다.
이 부분을 읽으니 과거 내 모습이 지나갔다. 부모님이 자주 하셨던 말 중 하나가 떠올랐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사랑받을 짓을 해야 예뻐해 주지."
부모님 두 분 다 자식들에게 헌신하셨다. 아버지는 외벌이로 여섯 식구 건사하느라 힘드셨고, 엄마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사 남매를 키워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덫이 있었다.
아마도 내 아이들에게 내가 엄마로서 뭔가를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이 정도면 됐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이 아이들과 나를 위한 길일 것이다.
벌써 6월이 다되었다. 올해도 상반기가 지나갔다.
하반기에 나에게 나름의 숙제를 내줄까 한다.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
'지금도 충분해.'
엄격한 기준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엄격한 기준 바꾸기(407쪽)
1. 당신이 지나치거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영역들을 열거해 보라.
2. 일상생활에서 이런 기준을 따르려 노력하는 것이 어떤 장점이 있는지 열거해 보라.
3. 지나치게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의 단점을 열거해 보라.
4. 이런 압력들이 없어질 때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해 이미지를 떠올려보라.
5. 삶의 덫의 기원을 이해하라.
6. 기준을 25% 정도 낮춘다면, 어떤 효과가 날 것인지 고려해 보라.
7. 자신의 기준을 맞추는 데 소모하는 시간을 가늠해 보라.
8.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여론 또는 객관적인 의견을 구함으로써 합리적인 기준이 무엇인지 결정하도록 노력하라.
9. 깊은 욕구를 더 충족시킬 수 있도록, 일정과 행동을 서서히 변화시켜라.
*아마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조차 없을 것이다. 미혼이라면 친구들과 애인에게 소홀히 대한다. 결혼한 후에는 가족들을 소홀히 대한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일하거나 집안을 정리하거나 지위를 향상하거나 너무 바쁜 것이다. 언젠가는 마음 놓고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갖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동안 인생은 흘러가 버리고 정서적인 삶은 텅 비어있다.(406쪽)
*완벽한 질서, 성취, 지위에 대한 욕구를 포기하고, 좀 더 높은 삶의 질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좀 더 만족스러운 정서적 관계에 대한 욕구를 선택하라.(415쪽)
시간구조화에서 활동->친밀 비중을 높이고 싶은 마음과도 이어졌다.
내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시간이다.
내 안에 크게 자리 잡고 있던
엄격한 기준을.
보트라는 노래를 한곡 반복으로 듣게 된다.
지금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 위해.
내 안의 욕구들을 그대로 읽어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