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척했을 뿐
드디어 그 날이 오고 말았다.
상담사례발표일이었다. 하루 전날까지, 두려움과 수치심에 떨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일찍 나가서 카페에 가서 상담사례를 읽어보고, 발표할 내용을 정리했다.
15분 사례 발표시간이 있었다.
친한 쌤들한테는 질문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왜그랬을까.
많이 많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 두려움의 중심에는 석사 2차 심사장면이 있었다.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고, 교수님의 화로 이어졌다.
교수님이 소리를 질러서, 주변이 있던 동기들이 다놀랐다.
당시 다른 동기들이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
"쌤 진짜 괜찮아요?"
나는 괜찮다고 했다.
괜찮은 줄 알았다.
.
.
.
.
.
아니었었다.
딱 1년이 지났다.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올랐다.
사례발표일이 다되어가니 그때 심사받던 방이 계속 떠올랐다.
공기 느낌이 느껴졌다.
어제 상담시연덕분에 알게 되었다.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던 거였다.
그때 나는 그대로 얼어버려서, 느끼지 못했었다.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말이다.
나를 돌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 대신 내가 혼나서 다행이라고 했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돌보지 못한 행위였다.
내가 마음상태가 당시 건강했다면?
펑펑 울었었어야 했다.
나는 나를 지키지 못했었다.
나보다 더 논문에 결함이 많은 동기는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갔었다.
내가 먼저 화살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억울했던거 같다.
지도 교수님은 그 동기의 논문을 봐주느라, 먼저 제출한 내 논문은 거의 패스했다.
그래서 다른 심사교수님께 더 혼났다.
그것도 억울했었다. 마음 속에 그 억울함을 간직한 채 표현하지 못했고,
그 감정의 덩어리들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었던 것이다.
이렇게 미해결된 감정들이 불쑥 불쑥 올라온다.
오늘 사례발표한 내담자의 모습 속에 내가 있었다.
그래서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담자한테 그 감정을 마주하게 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내 모습이 있었기에.
다른 사례에서는 역전이를 알아채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깊이 역전이가 일어나는지 몰랐다.
사례발표인지
교육분석인지 모를 시간이 2시간 지나갔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이 다가와서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어루만져주었다.
또 한 동료는 힘내라고 따뜻한 자몽차를 건내주었다.
그랬다.
이렇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모르고 살고 있었다.
오늘 여러모로 울컥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 상황에 같이 있었던
동기에게 전화해서,
이 알아차림을 전했다.
그 동기가 그랬었다.
"그때 쌤 진짜 괜찮지 않았을거 같아요.
쌤이 괜찮다해서 놀랐었어요."
그 상황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렇게 연대감을 느끼며 살고있다.
감사하게.
오늘 수퍼비전 받은 후기는,
트라우마 기억을 좋은 내적 기억으로 바꾸어서
그걸 상담장면에서 내담자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오늘 수퍼바이저 두 분에게서
인간적으로 따뜻한 애정을 느꼈다.
감사하게도.
이렇게 사랑받으며 살고 있다는 걸
미처 모르고 살고 있었다.
마치고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과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오후 햇살을 함께 느끼고 왔다.
2023년 6월 2일의 기억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