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인가?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시작이 언제부터였더라?
기억은 정확하게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아마도 '인정'이라는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나 보다.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잘 쓰는 건 아니다. 그저 생활에 녹아든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 초등학교 때였다. 엄마가 내가 쓴 시를 보고, 100편 채우면 책을 내준다고 했었다.
100편을 쓰는 꾸준함은 없었고, 엄마도 잊어버렸겠지. 그렇게 말씀하셔 놓고, 고등학교 때는 이과와 대학교에는 공대로 가라고 하셨다. 기술을 배우면 굶어 죽진 않는다고 하셨다.
굶어 죽을 일이 많이 있을까?
엄마는 그렇게 걱정하셨다. 혹시 딸이 문예창작학과로 간다고 할까 봐 고등학교 때 미리 차단하셨다. 적성검사했는데, 문과가 훨씬 높게 나왔는데 굳이 이과를 선택하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알아서 선택하면 될 일이었는데, 나는 참 엄마말을 심하게도 잘 듣는 딸이었다. 엄마는 딸이 글 쓴다고 할까 봐 그렇게 걱정이 되었나 보다. 행여나 굶어 죽을까 봐.
엄마! 기술직을 가도 힘들더이다. 이제는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게요.
책을 쓰고 싶었던 걸까?
2013년에 꿈꾸는 만년필이라는 책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돌이켜보니 거의 40, 50대 분들이 많았다. 본인의 일에 어느 정도 적응해서 성과를 내고 있는 분들이었다. 자산 및 인맥 등 여러 면에서 나와는 차이가 많이 났다. 그때는 글을 더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한 거 같다. 열등감, 수치심이 폭발해서 내 글보다 다른 거에 더 신경 썼다. 그러니 내 책이 나올 리가 있나. '서른 전에 결혼하지 마라'뭐 이런 가제로 글을 쓰다가 덮었다. 글 쓰다가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 생각하게 되어서 가정사를 정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큰 우여곡절이 시작되었다. 같은 기수에 다른 분들은 한 권씩 책을 냈다.
나는 책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다는 걸 알게 되었고, 비공개 글쓰기 클럽 '백일 쓰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 안에 이야기를 토해내다.
그때는 진짜 저 밑바닥 이야기들을 다 꺼내놨더랬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지금보다 나았을 수도 있겠다. 꿈꾸는 만년필에서는 매일 필사를 시켰는데, 글쓰기에 가장 도움 되는 훈련이었던 거 같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 아무래도 최고. 백일 쓰기 세 번을 하고 나니, 내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인연이 된 분 중 한 분은 아직도 연락을 한다. 내가 깊은 우울이 있었던 그 시절, 지하세계에서 지금 햇볕이 있는 지상세계로 걸어 올라오는데 그분 지분이 30% 정도는 있다. 매일 쓰다 보니, 머릿속에 장착이 되었던 거 같다.
글감인가?
매일 쓰던 때는 어떤 일이 생기면 '글감인가?' 생각했다. 시련에 시련이 겹치던 시기에는 힘듦에 압도당했었다. 어느 순간 글쓰기를 하게 되니, '이걸 글로 어떻게 쓰지?'로 바뀌었다. 비공개글쓰기 클럽이 좋긴 했다. 가림막 없이 날 것들을 써 내려갔으니 말이다. 브런치는 조금 다르다. 그때만큼 솔직하지 못하다. 내가 원하지 않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독자에게 낯가림이 있는 작가이다. 아직은 그렇다. 블로그에 그날의 생활을,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분들이 부럽다. (성격적 경향도 있지만, 과거 몇몇 사건들이 있다)
쓰다 보니, 지금 왜 쓰는지 세 가지로 정리하고 싶어졌다.
첫째,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어서'이다.
엄마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나이이기에.
둘째, 일상을 '승화'하고 싶어서이다.
지금 당장 일어난 힘든 일도 글쓰기에는 훌륭한 글감이다. 한 개인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작가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남들이 잘 겪지 못하는 흔하지 않은 일을 기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셋째, '전문성 강화'를 위함이다.
바쁜 날엔 글쓰기 빠듯하다. 글루틴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일에는 쓰게 된다. 그날 있었던 일을 떠올려서 글감을 찾는다. 빠르게 기록한다. 그러나 보니 낮에 있었던 일을 적을 수밖에. 상담일을 하고 있으니, 슈퍼비전 받은 기억, 교육분석받은 내용, 또 다른 상담교육 내용들도 기록하게 된다. 날아가버릴 수 있는 기억들을 남겨두니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는데 도움이 되더라.
쓰다 보니 나는 내 글을 읽는 독자에게는 참 불친절한 사람인 듯하다.
아직은 나에게 몰두하는 시기인가 보다. 세상에 연대감을 더 느끼려면, 조금 더 안전해져야 할 거 같다.
그래도 괜찮다.
내 속도가 있으니 말이다.
세상에 조금씩 다가가는 중이다.
글쓰기를 하면서.